여자를 완성한 여자 메리 퀀트
메리 퀀트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메리 퀀트] 영국과 여성의 갈비뼈 시대를 연 데이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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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그리던 패션소녀, 디자이너가 되다

모든 여자들은 패션소녀였다. 선천적으로 남자에 비해 월등한 눈썰미를 가진 여자들에게 패션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탐구주제가 된다. 헤어스타일과 손발톱, 액세서리, 옷과 화장 그리고 신발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변화들을 매의 눈으로 알아챈다. 그래서 그걸 못 알아차리는 남자들에게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귀할멈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반대로 여자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꾸민 적 없다 내숭을 부렸다가 웃긴다는 소리를 듣는다. 똑같이 드라마를 봤는데 여자는 줄거리 및 명대사 파악은 물론 그 날 방송 몇분 몇초대에 주인공 책상 위에 있던 시계까지 기억하고 검색을 해대니, 오늘날 마케터들은 PPL을 포기할 수가 없다. 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이지만 타고난 특질의 우위가 뒤집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 치고 어릴 적 스케치북 가득 여자들을 그리거나 (종이)인형 놀이를 하며 코디 연습을 하거나 새로운 룩을 제시하지 않은 사람이 또 있을까. 학예회나 수련회에서 준비한 게 없거나 마땅히 떠오르지 않을 땐 그렇게 패션쇼를 해댔다. 메리 퀀트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는 패션소녀에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가 된다.

 

패션과 여성해방

블루머란 옷이 있다. 길이가 짧고 통이 큰 바지의 끝에 고무줄을 넣어 푼푼하게 입는 옷으로 지금은 속옷이나 속바지, 잠옷으로 입지만,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을 땐 최초의 여성용 (겉)반바지로 고안한 옷이었다. 이 옷을 만들고 입길 장려한 아멜리아 젠크스 블루머는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로 불린다. 진정한 양성평등이란 무엇일까. 모든 일을 남녀가 동등하게 하는 것? 성적 차이를 인정하고 각 성의 우위적 특질을 중심으로 철저히 성역할을 나누되 동등한 가치로 평가받는 것? 20세기의 양성평등은 전자의 관점에서 외쳐졌다. 여성이 겉옷으로 바지를 입는 것은 남성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자전거나 말을 탈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의 의복에 실용성이 더해지는 것은 ‘여성의 인간화’의 출발이었다. 그래서 20세기의 여성 의복혁명은 여성해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블루머 이후 니트보커스 등 남성의 바지들을 여성용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하의는 점점 짧아졌다. 20세기 초반 코코 샤넬은 여성이 바지를 입어도 기품이 있고 여성성이 반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메리 퀀트는 짧은 하의의 종결점을 찍으며 실용적인 여성의복의 섹슈얼리티를 극대화시킨다.

 

영국과 여성의 시대가 열린 1960년대

해가 지지 않던 나라 영국이었지만 패션, 문학 등 문화에 있어선 계속 프랑스에 뒤져 있고 베끼기 급급했다. 게다가 양차대전 이후 헤게모니를 쥐게 된 미국이 비약적 문화적 성장을 이루니 자존심은 더욱 상했다. ‘영국적’인 것에 대한 오랜 갈증은 1960년대 비틀즈를 비롯해 영국의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대전환점을 맡는다. 거물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여전히 패션은 가정에서 부녀자들이 가족들의 것을 만들고 부띠끄에서 부유층의 주문을 받아 맞춤 제작하는 영역이었다. 최초로 산업혁명을 하며 근대산업사회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패션도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중심엔 메리 퀀트가 있었다. 메리 퀀트처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아 정신적 피폐함이 없었던 새 세대들은 새롭고 자유로운 문화 트렌드를 이끌었다. 성경에서 최초의 여성인 이브는 남성의 갈비뼈로 만든다. <메리 퀀트>에서 메리 퀀트는 1960년대가 갈비뼈(종속적 존재)에 불과했던 여성이 부각되는 시대라 표현한다. 메리 퀀트는 여성뿐만 아니라 조국 영국의 갈비뼈 시대를 열었다. 1960년대 이후 런던 역시 주요 패션 메카가 된다.

 

미니스커트와 이념 없는 혁명

메리 퀀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델 트위기다. 비달사순의 보브컷, 빳빳한 속눈썹, 20대 초반 느낌의 발랄함과 가는 체구, 미니스커트, 다양한 스타킹 패션. 196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트위기는 실제로 메리 퀀트의 모델이기도 했고, 앞서 언급한 그녀의 전성기 때를 상징하는 지배적 이미지들이 메리 퀀트가 제시했던 룩이었다. 특히 메리 퀀트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니스커트다. 흔히 그녀를 미니스커트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억울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앙드레 쿠레주가 최초이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는 1960년대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시에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메리 퀀트>에서도 관련 얘기가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미니 스커트하면 대개 메리 퀀트만 떠올리는 것은 힙라인에 딱 붙고 파격적으로 짧은 오늘날의 미니스커트를 제시한 사람이 그녀여서일 것이다. 메리 퀀트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핫팬츠도 제시했는데 둘 다 여성의복에 있어 혁명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재밌게도 메리 퀀트의 혁명엔 페미니즘이 없다. 그저 그녀 평생의 고민인 ‘어떻게 하면 여성이 더욱 예뻐 보일까’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낯선 데이지 그녀

하이패션(디자이너패션)에 합성섬유를 마구 섞고 캐주얼스러운 옷을 많이 만드는 메리 퀀트는 당대 패션계의 이단아였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의 이 패션 거물이 우리에겐 낯설다.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브랜드라 매장도 없고, 전공자들도 수업 시간에 많이 배우는 디자이너가 아니다보니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꼽는 경우도 적다. 확인차 집에 있는 패션책과 전공책들을 찾아봤는데 기억이 맞았다. 단 몇 줄로 스쳐 배우고 넘어갔었다. 2006년 국내 화장품브랜드인 미샤의 BI 카피 사건 때문에 메리 퀀트의 데이지 마크는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 화장품브랜드로만 아는 사람도 있다(메리 퀀트는 후에 화장품 사업에도 손을 대는데 현재는 일본 기업에 경영권을 전부 넘겼다). 아무래도 메리 퀀트의 패션 스타일이 동양에선 우리나라보다 일본 취향(실제로 메리 퀀트의 옷과 화장품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였고 그녀 역시 일본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했다)이기 때문에 국내엔 런칭이나 직접 진출이 없는 게 이해는 되지만 명성에 비해 너무 알려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메리 퀀트> 출간이 반갑고, 이번 기회로 메리 퀀트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할머니 일기장에서 찾는 보석 같은 영감과 자극

<메리 퀀트>는 올해 출간된 동명의 자서전을 번역한 책으로 메리 퀀트가 직접 쓴 책이다. 할머니 일기장처럼 주섬주섬 추억 보따리 꺼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래서 사진 자료가 대단히 적다. 중간 중간 메리퀀트의 사진은 있지만 본문 속에서 얘기하는 상품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으니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개성이니. 올해 메리 퀀트는 79세, 그래서인지 회고하는 과거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지도 않고 부정적일 수 있는 것도 긍정적으로 승화된다. 예를 들면 바람둥이라던 남편에 대해선 소제목과 달리 본문엔 그런 면들이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동반자로 표현되는 부분이 훨씬 많다. <메리 퀀트>는 학생, 디자이너, 엄마, 아내 등 모습과 역할은 다르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이 물씬 묻어나는 일화들로 가득 차 있다. 직접적이고 일목요연한 브랜드 소개와 비즈니스나 디자인 팁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은 책이었다.  노 디자이너가 현재 입거나 입으려는 옷이 지금 20대들보다 훨씬 혁신적이고 감각 있어 존경스럽다. 특히 그녀 책 전체가 보여 준, 어떤 거창한 기조 없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가슴에 깊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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