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루이비통 -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
황상민 지음 / 들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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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루이비통]

마케터가 모르는 마케팅, 소비자가 모르는 소비심리

‘소비자 심리학을 아시나요? 한국인을 위한 소비자 심리학 교양서’

 

 

 

http://der_insel.blog.me/120167727333

 

 

카프카는 종일 부족한 것을 생각하고 원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광고를 보지 않았다. 프롬은 인간이 행복한 존재가 되는 데에 소유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사회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긴다. 우리는 대공황을 통해 공급이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의 법칙은 틀렸음을 깨달았다. 생산을 계속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고 다양화해야 한다. 1987년 크루거가 데카르트의 명제를 패러디해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10년 후엔 보스하르트가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쓴다)는 슬로건이 적힌 포토몽타주를 제작했을 때 대중들은 신선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소비의 대상은 유무형의 재화뿐만이 아니다. 실존과 인간본위의 삶을 위해 멀리 했던 가치였던 소비가 이제는 정체성을 나타내고 실존의 중심가치가 되어버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소비자이자 마케터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스스로를 상품화하여 누구 혹은 어디엔가 소비되길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비자인 동시에 마케터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고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소비자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무엇을 남에게 제공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케터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능이든 노동력이든 무엇인가를 남에게 팔아야 하는 탓이다(우리는 이것을 ‘자아실현’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소비행위’라 할 수 있다(p.31).

 

 

 

 

황상민 교수의 TV 출연이 특정 분야가 아닌 전천후임을 깨닫고 나서 그의 전공이 무척 궁금해졌다. 처음 그를 TV에서 봤을 땐 아동심리학 교수인가 생각했고 그 다음엔 무난하게(?) 사회심리학인가 싶었다. 그리고 황 교수가 쓴 저서들을 보게 되었고,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정확한 전공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최근에 와서인데, 알고 나니 모든 의문이 풀렸다. 모든 활동이 전공에 기반을 둔 것임을, 흥행을 아주 잘 아는 분임을 깨달았다. 소비자를 연구하는 사람은 전략은 달라도 원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시대의 멘토가 될 수 있다. 황상민 교수는 그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우리 사회의 ‘유명 인사’다. 그는 10여년 이상 강단에서 소비자 심리학 강의를 했다고 하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발달심리학 혹은 인간발달학이다. 인간의 생애주기 및 발달단계 전체를 연구하거나 특정 단계(ex.아동, 노인)의 인간 행태 및 심리를 연구하는 분야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비 패턴이나 연령별 소비자 특성 연구와도 연결이 되고 황 교수 외에도 이 전공을 베이스로 한 소비자 연구자들이 꽤 많다.

 

 

 

황상민 교수가 이 책을 쓴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교과서는 모르는 한국 소비자 : 미국 소비자 이론의 한계와 우리식 소비자 연구의 필요성

2. 마케터가 모르는 마케팅: 경영학 중심의 마케팅 기법의 한계와 소비자 심리학 소개

 

 

 

소비자를 연구하는 학문으로는 경영학의 마케팅 분과, 심리학의 산업심리 분과, 경제학의 소비자경제 분과, 소비자와 소비행위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루는 소비자학 등이 있다. 그 외 규제행정론의 소비자보호, 광고학의 일부, 소비철학, 관련법 등 전공 단위라기보다 과목단위로 공부하는 분야도 있고 앞서 말한 인간발달학이나 문화인류학·사회학 같이 기본 바탕이 되는 학문도 있다. 그래서 학부 때 복수전공이나 타전공수강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분위기다. 그러나 기업 마케팅부서는 진입장벽도 낮은데다 고용도 불안정하고(인사 회전이 빠르고), 기업의 중심이나 사원들의 최종 비전인 경우가 별로 없다. 주요 경영학과 학생들이 고시나 CPA에 주로 매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나 공격적인 마케팅 욕구가 있어도 예산 제약이나 실패시 인사 공포 때문에 몸을 사리고, 무수히 쏟아지는 마케팅 서적 덕분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마케팅 지식은 다 가지고 있다. 경영학과 없는 대학을 찾긴 힘들고 시스템도 무난하나 소비자심리학과 소비자학은 좋은 학교가 손을 꼽는다.

 

 

 

소비자의 심리를 알고 그들의 특성을 구분한다는 것은 다양한 소비행동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그 이유나 동기, 내면에 가려진 심리적 근거들을 찾는 일이다(p.262). 소비현상은 우리 각자가 다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행동을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낸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사람 수만큼 다양한 행동이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시장에 접근하는 마케터들의 방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의 유형에 따라, 소비자의 마음에 따라,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서. 마케팅에서의 ‘고정관념’은 ‘고장 난’ 마케팅만 양산할 뿐이다(p.280).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사 리스크를 줄이려는 채용자 입장에선 전공자는 경영학과 위주로 뽑고 경영학 중심의 마케팅 전략, 누구나 다 아는 기법을 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누구를 위한 마케팅이고, 제대로 소비자를 파악하고 있는지. 미국의 마케팅 기법을 그대로 소개하는 교양서와 교과서만으론 한국 소비자를 분석할 수 없으며, 경영학만이 소비자 연구와 마케팅 분야의 전부가 아니란 것이 황상민 교수의 주장이다. 사회조사방법론에 기초한 기본적이고 기계적인 시장조사기법은 담당자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핵심적인 결과물은 도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소비자 연구기법은 계속 진화하고 학자들은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 적용 가능한 이론을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무조건적으로 경영학과 다른 소비자 연구 관련 학문을 대립시키고 후자의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 이론·기법과 최신 이론·기법의 대결, 흔히 이론(학문)이 실제(기업)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대한 반론에 가까운 책이다.

 

 

 

<목차>

1부. 시장으로 나온 심리학

2부. 특명 사례 탐구

3부. 대통령과 루이비통

 

 

 

<대통령과 루이비통>의 부제 ‘마케터도 모르는 한국인의 소비심리’를 보면 <한국인의 심리코드>, <짝 사랑>과 같은 저자의 이전 저작들처럼 ‘한국인’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한국 소비자 분석에 주력한 책일 것이란 예상을 한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은 잘 만들어진 한국형 소비자 심리학 개설서 같은 느낌이 강하다. 전공생들에겐 개론 수업 리더 정도로 제시할만하고, 전공 선택을 고민하는 고3 수험생이나 대학 신입생들에겐 괜찮은 전공탐색서이다. 한국 소비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하는 것은 3부에 와서이다. 1부에선 소비자 심리학에 대한 소개와 경영학과의 차이 비교, 소비자 연구의 역사와 중요 마케팅 사례들을 다룬다. 독자에 따라 이 부분도 한국 소비자를 분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2부는 프로야구팀과 휴대전화통신요금을 대상으로 소비자 심리학 관점의 분석 예시다. 꼼꼼히 읽으면 관련 전공수업 아무 시험이나 봐도 답안지에 뭔가 쓸 수 있을 정도로(C+이상의 학점 방어까지 보장하진 못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꽤 많은 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바를 ‘항상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p.124).

하워드 모스코비츠의 실험 (...) 보편성과 일반성의 법칙을 찾고 여기에 목매달던 사람들이 비로소 차별성과 개별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p.137).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합리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 비합리적인 성향의 인간이 만들어 내는 삶의 결과가 바로 ‘다양성’이다(p.140).

좋은 질문이 정확한 답을 유도한다(p.144)

 

 

 

소비자 연구에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한 가지 답은 없다. 보편성이 아닌 다양성, 수동적인 고객이 아닌 능동적인 소비자로 인식,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할 때 소비자가 보이고 마케팅이 성공한다. 가장 인기 많은 제품이 아니라 수요층이 있는데 없는 제품을 알아내는 것이 기업경쟁력과 시장창출로 이어지는 비결이다. 분석 단위는 더욱 세분화되어야 하고 보다 대상의 심층(내면)에 접근해야 한다. 황상민 교수는 이를 가리켜 ‘마음을 MRI’한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심리학에만 있는 기법이 아니라 경영학의 ZMET 등 다른 소비자 연구 분야에서도 고안·사용하고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만큼 마케팅에 있어 조정자·조사자의 역량이 점점 중요해진다. 당장 이 책의 사례들을 봐도 느낄 수 있다. 황상민 교수는 미국의 VALS 개념과 치환할만한 한국소비자 세분화 일반형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들을 내놓는다. 그런데 읽고 있노라면 각 유형들이 서로 겹치는 부분들이 많아 일반인들이 보기엔 자기 유형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헷갈린다.

 

 

이제 막연히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치 한국에서도 그대로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마케팅이나 소비심리에 대한 책은 더는 필요 없다. (...)

우리 삶의 방식과 삶의 가치, 그리고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다양한 행동에 대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야말로 소비심리에 대한 정확한 탐색일 것이다(p.368).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소개글과 목차, 독자 서평들을 보고 소비자 심리학이란 학문이 궁금하고 소비자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이 궁금해진다면 더없이 취향에 잘 맞고 즐거울 책일 확률이 높다. 한국인의 명품소비 등 이 책에서 황 교수가 내린 진단은 정답이 아닌 가능성이고 예시다. 또 현재에 있어선 타당한 분석이지만 과거에 그러지 않았듯 미래에 달라질 수 있는 현황이다. <대통령과 루이비통>은 쉬운 설명과 다양한 총천연색 사진 자료와 도표로, 소비자 심리학과 유용한 시장 조사 및 분석 기법에 대해 친절하게 얘기하는 책이지만 안내서이다. 이 정보들을 참고하고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에 흥미가 생긴다면 내용 요약본을 찾으려하지 말고 목차 정도만 훑어보고 직접 책을 읽으며 배우고 생각하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소비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능동성에 대해 돌아보고 견주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소비 가치에 매몰된 서글픈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나의 의지로 소비하는 것이고 그래서 행복한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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