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책
폴 오스터
Picador

 

어떤 자동응답 메시지

The little boy said : It's the bottom of the ninth. The bases are loaded, and two men are out. The score is four to three, my team is losing, and I'm up. If I get a hit, we win the game. Here comes the pitch. I swing. It's a ground ball. I drop the bat and start running. The second baseman scoops up the gronder, throws to first, and I'm out. Yes, that's right, folks, I'm out. Jacob is out. And so is my father, Alex ; my mother, Barbara; my sister, Julie. The whole family is out right now. Please leave a message after the beep, and we'll call you back just as soon as we round the bases and come home.

 

남자애가 말했다. "지금은 9회말 투아웃에 만루상황입니다. 스코어는 4대 3, 우리팀이 지고 있고, 제가 타석에 있습니다. 제가 안타를 치면 우리 팀이 이기는 거죠. 투수가 피치아웃을 했고, 저는 스윙을 했죠. 땅볼이네요. 전 배트를 던지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2루수가 땅볼을 주워서 1루수에게 던졌고 저는 아웃됐습니다. 그래요, 여러분 저 제이콥은 아웃(외출중)입니다. 우리 아빠 알렉스도 아웃(외출중)입니다. 엄마 바바라도, 누나 줄리도요. 가족 모두가 아웃(외출중)입니다. 삐 소리가 난 후에 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타석으로 돌아오는대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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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호리병박의 비밀 작은거인 11
장톈이 지음, 김택규 옮김, 왕지성 그림 / 국민서관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어릴적 '세가지 소원' 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걱정을 했다. 항상 빌 수 있는 소원의 가짓수는 제한이 되어 있으니, 소원을 빌고 나서 나중에 더 중요하고 좋은 소원이 생각나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궁리 끝에 그럼 마지막 소원을 "죽을 때까지 무한히 소원을 빌 수 있는" 소원을 빌면 되지 않을까,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면 정말 행복할까? 이 '요술 호리병박의 비밀'은 그런 분홍빛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이다.

주인공 왕바오는 좀 삐딱한 애다. 툴툴거리기도 잘하고 삐지기도 잘하고. 그런데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속 요술 호리병박이 어느날 정말로 왕바오에게 나타난다. 요술 호리병박은 달그락달그락 거리며 소원이 있으면 무엇이든 빌라고 말한다. 왕바오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맛있는 음식들을 하늘에서 뚝뚝 떨어뜨려주며 "먹어 봐! 먹어 봐!" 하고 유혹할 땐 정말 간드러진 목소리를 낼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소원성취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정말 바라지는 않지만 그저 지나가는 생각으로 잠깐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는 일들까지 척척 이루어지는 거다. 이래도 정말 좋을까? 왕바오를 보니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신기한 화분들, 자전거, 여러 가지 물건들 때문에 왕바오는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다.

더 재미있는 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호리병박이 어딘가 좀 모자란듯도 하고 신통치가 못한 거다. 요술 호리병박이 무턱대고 들어주는 소원 때문에 왕바오는 아버지와 할머니와 친구들을 속여야 한다. 거기다 역시 요술 호리병박이 잡아준 금붕어들은 그 소원들이 과연 진짜일까 하고 계속 딴지를 건다. 

왕바오는 자기가 갖게 된 여러 가지 물건들이며, 또 생각하기만 해도 자기 옆에 짠 하고 나타나는 친구들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기가 찬다. 이렇게 요술 호리병박에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한다.

내가 왕바오라도 그랬을 거다. 왕바오 같은 상황에 빠졌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다. 소원이 다 이루어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소원은 역시 세 가지만 빌 수 있어야 좋은 건가 보다. 뭐든지 너무 많으면 가치가 사라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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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와다 마코토 그림 / 열림원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와우북 페스티벌 때 산 책이다. 
오래된 책이고 절판된 거라 거저 얻을 수도 있었는데 왠지 돈주고 사고 싶었다. 
뭐랄까, 책 너의 속살을 보게 해준 데 대한 대가다...라고나 할까.

오랫동안 묵혀 두다가 며칠 전에야 읽게 됐다.
하루키의 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전부인양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아무리 하루키 매니아라 하더라도!) 재즈에 입문하기에는 무리없는 책이다. 
와다 마코토의 원색적이고 단조로운 그림 또한 볼만하다.
왠지 재즈를 들으면 어딘가 '건조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느낌을 잘 살린 그림들이다.
여기서 '건조하다'는 건 내 거친 피부를 보며 '얼굴이 건조해 보인다'라고 말하거나, 융통성 없는 날 보고 '넌 왜 그렇게 사람이 건조하냐'라고 말할 때의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
오히려 음의 정수들만을 모아서 자르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명료한 상태를 말한다.
 
 
전에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부르는 재즈 가수의 내한공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가수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그만 정말 술에 취해 노래하는 줄로 믿었었다. 그녀는 약과 술에 쩐 빌리 홀리데이의 말년을 연기한 건데, 알콜중독으로 손을 덜덜 떨고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까지 정말 깜빡 속을 정도였다. 
 
 


그녀의 스윙에 맞추어 세계가 스윙하였다. (35쪽)

 

그런데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하루키의 감상은 짧지만 아주 강렬했다. 사실 한 재즈 가수의 연기에 투사된 빌리 홀리데이의 애처롭기까지한 모습에서 저렇게 신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연결시키기란 쉽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아침 지하철 안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전율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다.  
저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는 오만을 부리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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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1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게 읽으셨나봅니다.
약간 방향이 다른 책이지만, 무라카미 류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도 좋던데요..


부엉이 2007-03-20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류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는 책이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잊고 책 속에 온전히 몰입하게 해주는 책일 거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책은 '재미있다'라는 말에 '강인한 흡인력을 지닌'이라는 뜻을 첨가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이야기 자체의 흐름에 빠져 지나쳐버린 열쇳말들, 나중에 비밀의 문들이 하나씩 하나씩 열릴 때, 그것이 바로 열쇠였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 주의깊은 독자라면, 작가가 곳곳에 흘린 열쇠들을 주워담아 진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혼란스럽게 뒤섞여있던 조각들이 신기하게 제자리를 찾아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즐기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큰 묘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가렛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제인 에어>인데, 그런만큼 이 소설의 분위기와 몇 가지 모티브도 <제인 에어>와 비슷하다. 어두침침하고 음울한 분위기,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배경이 되는 황량한 황무지 속에서 헤매다 온 느낌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황무지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따뜻하고 아늑하게 쉴 만한 장소도 있다. 바로 마가렛과 아버지가 운영하는 책방이다. 책을 사고파는 장소라기 보다는 책들이 쉬는 곳이라 할 만큼 고요한 곳. 정말 그런 책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책 내용을 가지고 리뷰를 쓰려다보니, 온통 스포일러 투성이가 될 것 같아서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 늘어놓았다. 이 책의 띠지에 "진실을 말해주세요" 하고 누군가가 간절히 외치고 있는데, 그 진실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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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출간을 앞둔 책 때문에 인쇄소에 갔다.
인쇄소에서는 바로 옆사람과도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기계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냥 순식간에 쌓여가는 인쇄된 페이지들을 하염없이 볼 뿐이다.

중간중간에 인쇄기사님이 인쇄 상태를 확인하느라 종이를 빼내는데, 그러다 종이가 걸린 적이 있었다.
부리나케 기계 중간 부분에 달려 갔다 오신 기사님은 하얀 가루를 잔뜩 뒤집어 쓰고 오셨다.
어디든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면 모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하얀 가루 먼지는 단 1시간 그곳에 있었는데도 목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에어 컴프레서로 먼지를 대강 털고 오신 기사님은 기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부분 여기서는 모두들 뛰어다닌다. 그리고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게 기름과 화학재료에 절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책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나는 책의 내용, 그러니까 정신적 측면을 만들지만 저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거다.
지금까지 책을 정신적 산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인쇄소에 있어 보니 그런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거였는지 새삼 느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이든 남에 의해서든 물리적 형태로 읽을 수 없다면 단순히 생각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인쇄소에서 문득 책이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각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노력과 땀과 아이디어가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태어날 수 있는 것.
이런 의미에서도 책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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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책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 정신적산물이자 물리적산물이네요.
그래서 책은 책 이상의 무엇인가 봐요. 부엉이님,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모습이
엿보여요^^

부엉이 2007-03-1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람도 느끼고 좌절도 느끼지만 그래도 보람>좌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