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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와다 마코토 그림 / 열림원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와우북 페스티벌 때 산 책이다.
오래된 책이고 절판된 거라 거저 얻을 수도 있었는데 왠지 돈주고 사고 싶었다.
뭐랄까, 책 너의 속살을 보게 해준 데 대한 대가다...라고나 할까.
오랫동안 묵혀 두다가 며칠 전에야 읽게 됐다.
하루키의 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전부인양 믿어서는 안되겠지만 (아무리 하루키 매니아라 하더라도!) 재즈에 입문하기에는 무리없는 책이다.
와다 마코토의 원색적이고 단조로운 그림 또한 볼만하다.
왠지 재즈를 들으면 어딘가 '건조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느낌을 잘 살린 그림들이다.
여기서 '건조하다'는 건 내 거친 피부를 보며 '얼굴이 건조해 보인다'라고 말하거나, 융통성 없는 날 보고 '넌 왜 그렇게 사람이 건조하냐'라고 말할 때의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
오히려 음의 정수들만을 모아서 자르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명료한 상태를 말한다.
전에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부르는 재즈 가수의 내한공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가수의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그만 정말 술에 취해 노래하는 줄로 믿었었다. 그녀는 약과 술에 쩐 빌리 홀리데이의 말년을 연기한 건데, 알콜중독으로 손을 덜덜 떨고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까지 정말 깜빡 속을 정도였다.

그녀의 스윙에 맞추어 세계가 스윙하였다. (35쪽)
그런데 빌리 홀리데이에 대한 하루키의 감상은 짧지만 아주 강렬했다. 사실 한 재즈 가수의 연기에 투사된 빌리 홀리데이의 애처롭기까지한 모습에서 저렇게 신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연결시키기란 쉽지 않았지만, 흔들리는 아침 지하철 안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전율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강렬했다.
저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는 오만을 부리고 싶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