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출간을 앞둔 책 때문에 인쇄소에 갔다.
인쇄소에서는 바로 옆사람과도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기계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냥 순식간에 쌓여가는 인쇄된 페이지들을 하염없이 볼 뿐이다.
중간중간에 인쇄기사님이 인쇄 상태를 확인하느라 종이를 빼내는데, 그러다 종이가 걸린 적이 있었다.
부리나케 기계 중간 부분에 달려 갔다 오신 기사님은 하얀 가루를 잔뜩 뒤집어 쓰고 오셨다.
어디든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면 모조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하얀 가루 먼지는 단 1시간 그곳에 있었는데도 목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에어 컴프레서로 먼지를 대강 털고 오신 기사님은 기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대부분 여기서는 모두들 뛰어다닌다. 그리고 목소리가 엄청나게 크다.
그렇게 기름과 화학재료에 절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책의 또 다른 면모가 보인다.
나는 책의 내용, 그러니까 정신적 측면을 만들지만 저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인 것으로 만드는 거다.
지금까지 책을 정신적 산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인쇄소에 있어 보니 그런 생각이 얼마나 건방진 거였는지 새삼 느꼈다.
어쨌든 자기 자신이든 남에 의해서든 물리적 형태로 읽을 수 없다면 단순히 생각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인쇄소에서 문득 책이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각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노력과 땀과 아이디어가 서로 결합되어야만 비로소 태어날 수 있는 것.
이런 의미에서도 책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라고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