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오늘에 썼던 글.

지금은 그때의 그 고역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진짜 사는 게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고작 1년 뒤에는, 이런 글을 읽어야만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일들을 가지고 뭐 그리 고민을 해쌌나 싶은 생각. 고로 정답은 그냥 순간을 즐기며, 정말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거나 싸우는 게 싫었고 그런 일을 막으려고 내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그랬는데, 1년 전 이 사건을 겪은 이후로 좋게 말하면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렸고, 나쁘게 말하면 애착을 버린 것 같다. 

십수 년 전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남자친구도, 나를 이렇게 무너지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힘듦의 종류가 다소 다르긴 했지만, 누군가를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드러난 못난 나 자신을 죽도록 미워했던 아주 생소한 경험이었다. 돌려 말하면 내가 숨기고 싶어서 가장 깊숙이 넣어둔 이런저런 것들을 다 까발려버려서 너무 놀랐다고 해야 할까. 

비겁하지만 나는 그 사람과 '단절'하는 법을 택했다. 아주 정중하고 아주 티 안 나게. 

가끔,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기억에 떠오르긴 하지만 나쁘지 않다. 

아마도 그 사람은 본인의 입장에서는 전혀 악의 없이 또 누군가를 그렇게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뭐 상관없다. 혹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사람이 잘 딛고 일어서 자신의 다른 면을 보게 되길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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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속으로 한발짝 두발짝 들어가는 동시에 자기 삶을 전과 다름없이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추락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질 때 언제나 부여잡게 되는 건 신앙과 책. 불변의 뭔가를 원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인 것 같다. 

어제 카페인 초과로 위와 정신이 아우성치고 있을 때 어둠을 틈타 묵주를 꺼내들었다. 요즘 거의 무신론자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묵주를 찾는다는 게 너무 파렴치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누군가 당신은 천주교 신자입니까 하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곳에서 강요하는 형식이 아닐지라도 신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죄와 벌>을 꺼내들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질투와 시기, 강박, 비하 등등 이 저렴한 감정이란 것의 실체와 원인을 알아야 뿌리를 뽑고, 다시 이런 게 찾아왔을 때 무던하게 넘겨버릴 수 있을 거란 희망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지 않았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특히 최근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더욱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갑자기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왠지 사로잡았다.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생기면서, 그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한 달 동안이나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고민과 음울한 흥분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한순간이나마 어느 곳이든 상관없이 다른 세계에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이 굉장히 더러웠지만, 그래도 기꺼이 술집에 남았던 것이다."(p.22)


세입자들은 이상하고 은밀한 만족감을 느끼면서 한두 명씩 문 쪽으로 물러났다. 이 만족감은, 친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다고 할지라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으레 마음속에 품게 되는 감정이며, 아무리 진실한 슬픔과 동정심을 갖는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예외없이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이었다. - P262

"그런데 네 방은 정말 형편없구나, 로쟈. 꼭 관 속 같아."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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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땐 뇌과학 - 뇌를 이해하면 내가 이해된다
카야 노르뎅옌 지음, 조윤경 옮김 / 일센치페이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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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기관 중에서 가장 신비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뇌'가 아닐까. 뭐 다른 기관들도 그 작동 원리를 파고들면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모든 동물 중에서도 가장 고등한 인간의 뇌는 최고가 아닐까 한다. 
사실 이러한 뇌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낸 여러 학자들의 연구 역시, 고차원적 뇌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두엽, 대뇌피질, 변연계 등등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뇌의 영역들이나, 시냅스, 미엘린, 축삭돌기 같은 미세한 구조와 기능방식까지, 복잡하고 유기적인 구조도 구조이지만 그걸 알아낸 학자들에게도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을 만난 건 운명적이었다. 요즘 심리학과 뇌과학을 통해 인간관계의 해법을 찾는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뇌 구조와 관련한 설명에서 참고도서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겸사겸사,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이후로 진득하게 책 읽기가 몹시 힘들어진 상황이라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도 절실했다. 그러던 차에 SNS에서 이 책의 서평단 모집 게시물을 봤고, 평소 이런 '당첨'의 운이 별로 없긴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덜컥 신청했다. 

다행히 과학의 '과' 자도 모르는 문과 무지렁이가 봐도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가속도가 있는 책이다. 더 심각한 걸 원하는 분들에겐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뇌과학도 내지 신경과학도를 꿈꾸지 않는 이상 속인들의 지식욕을 채우기엔 아주 딱인 책이지 싶다. 
전문적인 용어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음에도, 정갈한 번역과 편집, 일목요연한 구성, 적절한 예시들로 가끔가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통찰도 선물해준다. 

목차를 살펴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4장 내 머릿속 내비게이션 -뇌 GPS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훈련으로 머릿속 GPS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세상 모든 길치에게 희망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길치인 나는 어렸을 적 가장 큰 공포가 '어딘가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햇수로 6년째 제주에 살고 있으나, 아직도 여기가 동쪽인지 서쪽인지 잘 구분을 못하고, 남편이 '여기 왔었던 거 기억하지?'라고 물으면 우물쭈물 자신있게 대답을 못하는 중증 길치다. 가끔 왼쪽과 오른쪽도 헷갈려서, 혹시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 깜빡이를 켤까 봐 운전면허도 따지 못한, 딱한 뚜벅이가 바로 나란 사람이다.

방향감각이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지만, 뇌의 GPS에 해당하는 해마를 단련하면 길치 탈출이 가능하다니, 나에겐 정말 희망적인 소식이다. 생각해 보니, 아직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동생과 유럽여행을 갔을 때 지도에 의지해서 이곳저곳 길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나보다는 길눈이 밝은 동생이 더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일단 생판 모르는 곳에서 숙소를 찾고, 어딘가를 돌아다니다 다시 숙소로 무사귀환 했다는 게 남들보다 작을 나의 앙증맞은 해마 덕분이라니, 고맙다 해마야! 

그런데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스마트폰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뇌에 독 같은 존재란 걸 여실히 깨닫는다. 훈련을 통해 해마를 단련시킬 수는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종이로 된 지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일본의 한 실험은 굉장히 흥미롭다(150쪽부터 관련 내용). 피실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는 내비게이션 앱이 있는 휴대폰을 주고, 두 번째 그룹에는 종이 지도를 주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말로만 설명을 해주었다. 목적지에 도달한 뒤 이들에게 걸어온 경로를 지도로 그려달라고 했는데, 누구나 예상한 바대로 가장 힘들게 지도를 그린 그룹은 첫 번째 그룹이고, 가장 쉽게 그린 것은 세 번째 그룹이었다.
놀라운 것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한 첫 번째 그룹이 가장 먼 경로를 택했고, 가능 도중 가장 많이 멈칫거렸다는 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진짜 소리내어 '오호~'라고 말했다. 남편도 늘 그런다. 평소에는 내비게이션을 잘 안 쓰지만, 처음 가능 장소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나면 항상 "저 길로 가면 될 것을, 내비 때문에 한참 돌아왔네"라고 투덜거리는 것이다. 

또 인간의 기억에 관해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기억은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온갖 감각 정보들로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보호 장치"(130쪽)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만 구성해서 '기억의 골격'을 형성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하위로 분류하거나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더라도 구석탱이에 밀쳐놓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그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건 누구지?' 이건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지 않나? 왜 가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 더 선명하게 떠오르고, 기억하고 싶은 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나? 
기억의 왜곡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구정에 친정에 갔다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을 가지고 왔는데, 일기를 읽어보곤 멘붕에 빠졌다. 나름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일기 속에는 시험을 많이 틀려 고뇌하는 6학년의 내가 있었다! 가끔 시험을 좀 잘 본 적도 있었는데, 아마도 내 기억의 골격은 이 정보를 가장 중요한 사실로 저장했는가 보다. 어쨌든 기억도 생존본능의 하나로, 분명 나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별하여 저장하는 것이겠지.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반성의 기회를 가져본다. 스마트폰이 여러 모로 독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 '읽지도 않을 책 뭐하러 사'라며 핀잔을 주는 남편에게 '읽을 거야, 읽을 거라고' 소리만 지르는 나. 여기서 벗어나려면 스마트폰은 눈과 뇌를 늙게 하고 결국 치매로 귀결될 확률을 아주 많이 높인다는, 고로 건강한 100세 시대를 위해서는 건강한 식습관과 적절한 운동, 그리고 해마 단련이 중요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이제 마음에 담아두지만 말고 실천에 옮기자!
진짜 끝으로, 좋은 책과 좋은 영화를 보면 결국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데, 이 책을 통해 별 고민 없이 오랜만에 긴 수다를 부려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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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작업을 하면서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너무 술술 읽혀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몇 페이지가 훌쩍 넘어간 뒤에야

알아차렸던 책이다. 

사실 직업상 계속 뭔가를 읽고는 있지만 

뭘 읽어도 '내가 읽는 게 읽는 게 아니야' 같은 기분이 들곤 했는데,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해준 책이랄까. 

일하면서 이런 책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책을 읽으면서 키르케고르에게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작가 자신은 어찌 보면 너무도 예민하고 우울한 삶을 살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그런 고통에서 우러나온 성찰로부터 위안을 받는다는 게

어쩐지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 책도 그렇고, 이 책을 작업하기 위해 들춰본 책들도 그렇고,

요즘 서점가에 나와 있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두루 살펴보면

나 자신을 응원하는 책이 무척 많다.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도 마찬가지..)

그만큼 개인이 오롯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론 이제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비로소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뜻이기도 해서 반가운 마음도 든다.


'괜찮다'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란 생각을 어제 문득 했다. 

모든 상황의 껄끄러움을 한방에 녹여내는 마법 같은 말. 

남에게는 잘 쓸지언정 자신에게는 잘 쓰지 않던 말을,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참 많이 되뇐 것 같다. 

그리고 왠지 성공한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며 하는 이야기보다는

진창 같은 삶을 딛고 지금의 자리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 와 닿는 법이다. 


'실존, 실존주의'라는 말을 삶과 동떨어진 철학적 용어가 아닌,

생계형(?) 철학으로 삶에 밀착해서 해석한 작가의 따뜻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자기계발서를 폄훼하는 (나 같은!) 이들을 살짝 나무라며

'모든 책은 자기계발서다'라고 일갈한 부분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려본다. 


*그나저나 언제 다시 성당에 나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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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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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누군가를 변화시킨 적이 있던가. 그러려고 노력한 적이 있던가. 리디아 그레이스가 내게 보여준 것은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타인과 나누려는 사랑과 관심의 마음이었고, 낯선 곳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인내였다. 학부와는 다른 대학원에서,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버렸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내게 호의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이라 느꼈던 직장에서, 결혼과 함께 생긴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어디서도 나를 보여주기도 싫었고 그래서 보여주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길 바랐다. 그게 나를 잃지 않고 지키는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주변의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세상과 융화되지도 못했고 고집스럽게 딱딱한 돌덩이처럼 변해갔다.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싫고, 내가 인정받아온 것들을 건드리는 것도 싫어서 내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화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무한한 'YES'를 보내는 사람들한테만 말랑하게 나를 바꾸었다. 


리디아는 원예일은 잘하지만 빵 만드는 일은 해본 적이 없으므로 잘 못한다. 리디아는 어쩔 수 없이 원예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자기가 잘하는 원예일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빵 만드는 일을 잘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원예일(=자기 자신인 것)을 놓지 않도록 애쓰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고, 그 와중에 타인에 대한 관심(무뚝뚝한 삼촌을 웃게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삼촌은 끝내 웃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무릎을 꿇고 리디아를 꼭 안으며 내리깐 눈에는 깊은 사랑과 허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다. 리디아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인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전에도 내가 남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란 건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부끄러울 지경이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게 진정 마음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유를 가질 상황이 제발로 찾아올 상황이란, 앞으로 생길 것 같지 않다. 내 삶에 자생하던 여유는 이제 바닥나고 없으므로,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을 모아 여유를 불려나가야 하며 그 안에 가장 먼저 '나'를 넣고 그리고 주변의 세상을 곁에 바짝 붙여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저 때가 되면 저절로 생길 줄 알았고, 고갈되지 않고 영원히 샘솟을 거라 착각했던사랑이나 여유, 관심 등등등이 실은 꽃을 가꾸듯 바지런히 손을 놀려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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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2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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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다 천재가 아닐까..? 아.. 나처럼 느리고 머리 나쁜 인간은 절대 작가가 될 수 없을 거야...'
뒤마의 <삼총사>는 읽는 내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영원히 충족되지 않을 그 욕망에 대한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마침 알파고 때문에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사들을 읽었는데, 그래도 작가라는 직업은 인공지능이 절대 흉내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일 거라 생각한 참에, 그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문학상 심사 1차를 통과했다는 기사를 읽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젠장, 인간은 미래에 뭘 해먹고 살란 말이냐? --+)
대충 이 책의 리뷰를 훑어보니 다들 어린시절에 한 번은 스치고 지나간 그런 작품인데, 난 책도 영화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달타냥은 삼총사의 꼬붕 정도고, 포르토스는 장비 스타일, 아라미스는 이름이 정말 예쁘고, 아토스는 삼총사의 대장 격이며, 밀레디는 이름마저도 신비롭다 정도로 <삼총사>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뭐 구태여 주인공을 꼽자면, 스토리의 맥락을 끌고 가는 인물은 달타냥인데 왜 이 책의 제목은 '사총사'가 아니고 '삼총사'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좀 들었다. 어쨌든 생각보다 (매우) 어린 이 인물의 무모함과 어디든 무턱대고 덤벼드는 가스코뉴 사람 특유의 치기가 너무 재미있다. 이 시대 소설들이 다 그렇듯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사건이 연결되는 과정이나, 완전 유머러스하고 큭큭큭 웃음이 새어나오게 만드는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들 모두 책장을 휘휘 넘어가게 만든다. 
<시그널>이 한참 방송될 때 금요일과 토요일을 몹시 기다렸던 것처럼, <삼총사>가 연재되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뒤마 시대의 독자들을 생각하니 공감도 느껴지고 스릴도 느껴진다.
유럽에 갔을 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어, 이건 책으로 보던 그림과 똑같잖아. 그림을 못 그릴래야 못 그릴 수가 없었겠군' 하며 감탄 아닌 감탄을 했었는데, 시대 자체가 소설적이라 할 만큼 파란만장 했던 소설 속의 역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요소들을 이렇게 재미나게 버무린 뒤마(와 집필공장의 이름 모를 수습생들)에게 진심 감사하며, 삼총사를 다 읽고 나면 이번에 우리 고전에도 많이 많이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좀 부끄러운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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