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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의 정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3
사라 스튜어트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이복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누군가를 변화시킨 적이 있던가. 그러려고 노력한 적이 있던가. 리디아 그레이스가 내게 보여준 것은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을 타인과 나누려는 사랑과 관심의 마음이었고, 낯선 곳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인내였다. 학부와는 다른 대학원에서,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버렸던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내게 호의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이라 느꼈던 직장에서, 결혼과 함께 생긴 새로운 가족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어디서도 나를 보여주기도 싫었고 그래서 보여주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지내길 바랐다. 그게 나를 잃지 않고 지키는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나를 포함한 주변의 세상을 변화시키지도, 세상과 융화되지도 못했고 고집스럽게 딱딱한 돌덩이처럼 변해갔다.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도 싫고, 내가 인정받아온 것들을 건드리는 것도 싫어서 내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화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무한한 'YES'를 보내는 사람들한테만 말랑하게 나를 바꾸었다.
리디아는 원예일은 잘하지만 빵 만드는 일은 해본 적이 없으므로 잘 못한다. 리디아는 어쩔 수 없이 원예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지만, 자기가 잘하는 원예일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빵 만드는 일을 잘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원예일(=자기 자신인 것)을 놓지 않도록 애쓰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였고, 그 와중에 타인에 대한 관심(무뚝뚝한 삼촌을 웃게 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삼촌은 끝내 웃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무릎을 꿇고 리디아를 꼭 안으며 내리깐 눈에는 깊은 사랑과 허한 아쉬움이 짙게 묻어난다. 리디아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인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전에도 내가 남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란 건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부끄러울 지경이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에게 진정 마음을 쓸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유를 가질 상황이 제발로 찾아올 상황이란, 앞으로 생길 것 같지 않다. 내 삶에 자생하던 여유는 이제 바닥나고 없으므로, 나는 아주 작은 조각들을 모아 여유를 불려나가야 하며 그 안에 가장 먼저 '나'를 넣고 그리고 주변의 세상을 곁에 바짝 붙여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저 때가 되면 저절로 생길 줄 알았고, 고갈되지 않고 영원히 샘솟을 거라 착각했던사랑이나 여유, 관심 등등등이 실은 꽃을 가꾸듯 바지런히 손을 놀려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