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내 몸이 내게 붙어 있지 않다는 의식이 점점 뚜렷해져 갔다. 아마도 그건 자신의 몸을 볼 수 없는 탓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손바닥을 눈앞에까지 가져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왠지 야릇한 일처럼 느껴졌다. 계속 그런 상태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그 몸이란 것이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8쪽
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이처럼 대단한 공포심을 자아낼 줄은 나도 몰랐다. 그것은 심한 경우에는 판단 기준이라든가 혹은 자존심이나 용기 같은 것마저도 앗아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달성하려고 할 때에 아주 자연스럽게 다음의 세 가지를 파악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일을 해냈는가? 지금 자신은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이제부터는 어느 정도의 일을 하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박탈당하고 나면, 뒤에는 공포와 불신과 피로감밖에는 남지 않는다.-37쪽
"... 만약 당신이 수면 부족이라는 이유로 당신 자신을 동정하기 시작하면, 나쁜 힘이 거기부터 비집고 들어오는 거예요. 알아요?"-49쪽
"... 어둡고 힘겹고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꼭 껴안아 주었으면 했는데, 그때 주위에 자신을 안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은 이해하겠어요?"-53쪽
"이 도시의 완전함은 마음을 상실함으로써 성립되는 거야. 마음을 상실함으로써, 각각의 존재를 영원히 늘여진 시간 속으로 끼워 넣고 있는 거지... 그런데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얘기기도 하지. 그건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야.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이 생기는 거야.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아무데도 없어. 그게 내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거야..."-239쪽
인간 행동의 대부분은 자기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간다는 전제에서 비롯되는 것이어서, 그 전제를 없애 버리고 나면 뒤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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