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중 알라딘의 알림을 보았다.

솔제니친의 <수용수군도> 라는 책이다.  

 

수많은 책들의 홍수 속에서 내가 읽고 싶은, 갖고 싶은 책들이 있기 마련.

알라딘의 특별 구성 때문에 또다시 책을 뒤적이고 있다.

 

 

그외 구입하려고 목록 만들어놓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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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7-12-08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림 안 왔어요 ㅠㅠ 신간 페이지보다 발견했는데 넘 반가워요.

Breeze 2017-12-08 14:45   좋아요 0 | URL
그죠? 사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하네요. ^^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집은 더이상 집이 아니게 된다. 사랑했던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공간을 견디지 못한다. 추억이 배어있는 사진들, 물건들.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 힘들어 사람들은 다른 공간으로 이주하거나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나름의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다. 우리 또한 그러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지 않은가.

 

『파이 이야기』의 얀 마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구원의 길에 이르는 이야기를 한다.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자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전체의 맥락으로 보면 같은 이야기다. 시대를 달리해 고통의 시간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것으로 구원을 얻는가에 대한 이야기 였다.

 

190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 고미술 박물관의 학예사 보조로 일하고 있는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를 잃는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토마스는 신에 대한 반발로 뒤로 걷기 시작한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노예 무역이 활발하던 시대의 그들을 위했던 율리시스의 신부의 일기를 발견한다. 예수의 형상을 유인원처럼 만든 십자고상을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성당에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토마스는 17세기의 십자고 상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 부자인 숙부에게서 자동차를 빌려 많은 물건을 싣고 그곳으로 향한다.

 

1939년의 포르투갈의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 그가 하는 일은 시신을 부검하는 일이다. 늦은 밤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그는 아내 마리아의 방문을 받는다. 마리아와 에우제비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그날 밤에도 마리아가 찾아와서는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가 존재의 서술이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부재의 복음서라는 이야기를 한다. 마리아가 가고난 뒤 같은 이름의 마리아가 찾아와서 남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펴달라고 한다.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할 때 그의 곁을 지키고자 하는 마리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1981년의 캐나다 상원의원인 피터. 아들의 이혼과 손녀의 반항기까지 겹친 그는 아내를 사별한지 6개월이 되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유인원 연구소에 방문했고, 그곳에서 침팬지 오도를 바라보게 되는데 이상한 끌림이 있었다. 불현듯 오도를 구입해 부모님이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세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인 토마스, 에우제비우, 피터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슬픔을 견디기 힘든 그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신을 찾는다. 부모님의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위치한 집에서 피터는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그에게 침팬지 오도는 인간보다도 더 큰 위로를 주게 된다. 토마스 또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한 아이를 차에 치어 죽이게 되고 유인원의 형상을 띤 십자고 상을 바라보며 슬픔의 오열을 하며 신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죽음과 같은 이름의 마리아의 남편을 부검하며 구원이라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하나의 선물처럼 다가온 것들이다. 마음의 안식을 얻으며 고통의 시간들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2부, 3부의 소제목처럼 우리는 결국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을 했던가. 집을 잃고, 집으로 향하는 길 또한 결국 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안식의 집, 구원의 집. 비록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서, 그에게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조차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로 인해 고통스럽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토마스와 피터에게 포트투갈의 높은 산이었으며 안식의 장소였다는 것을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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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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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으로 일하는 조 피킷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오픈 시즌』은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추리소설의 범주를 벗어났다. 독특한 직업, 여타의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가정적인 남자. 수렵감시관으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조준을 해 쏘는 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남자다. 그렇다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완벽한 남자도 아닌 것 같다. 글쎄 사냥 시즌이 아닌 때 사냥을 하는 남자를 붙잡았다가 그만 총을 뺏기고 만 남자다. 총도 제대로 못 쏴, 이래가지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한 일로 조 피킷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정직될지도 몰랐다.

 

조 피킷의 큰 딸 셰리든이 밤새 괴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악몽을 꾸었다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된다. 셰리든이 꾸었던 꿈이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었다. 조가 총을 빼앗겼던 남자가 자신의 집 장작더미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몸에 피를 흘린 채. 그는 아이스박스를 한 개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스박스 안에는 동물의 분비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셰리든은 장작더미 옆에서 동물들 몇 마리를 발견하고, 가족에게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의 애완동물로 키우고자 한다. 먹을 것을 부모 몰래 남겨 이름을 지어준 애완동물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생과 둘이서만 알게 된 비밀이 되었다.

 

 

조 피킷은 오티 킬리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조사에 임하게 되고, 그와 함께 수렵감시관 일을 배웠던 웨이시와 바넘 보안관의 지휘 아래 보안관 대리와 함께 캠프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총에 맞은 클라이드를 발견하고 무슨 일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나름의 방법대로 조사를 시작하는 조. 수렵감시관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조사해도 되나 싶지만, 바넘 보안관은 크게 저지하지 않는다.

 

캠프에서 왜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가 조사를 시작한 조 피킷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스치듯 말을 듣는다.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사냥은 금지될 것이다. 이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누군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을 벌였단 말인가.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가 중요한 관건이다.

 

 

 

 

C.J. 복스는 그러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지 몰랐던 수렵감시관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서게 만든다. 또한 조 피킷의 가족이 타깃이 되어 피해를 입는다. 약간은 어수룩하게 보였던 가정적인 남자 조 피킷에게서 동물적인 수사 감각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러고보면 여자들은 사람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것 같다. 조 피킷의 아내 메리베스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조 피킷이 주변 인물들과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그 중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눈쌀을 찌푸렸으니 말이다. 물론 소설 속 여자들이 메리베스처럼 지혜롭거나 현명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사냥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초반엔 조 피킷의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휘몰아치듯 사건이 진행되는 바람에 소설에 쏙 빠지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조 피킷 만의 사건 해결법에 빠졌달까. 동물에게 조용히 다가서듯 사건을 해결했다. 그것도 통쾌하게. 아마 그가 보안관이 아닌 수렵감시관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 피킷의 다음 행보가 기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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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여성으로서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조남주 작가가 조목조목 따지는데, 여태 감춰두었던 감정들이 솟구쳤다.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여성들은 깊이 공감하며 분개하는데, 정작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남성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는 모양이다. 공감할 수도 없으며 재미도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어쩌면 당연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본인들은 그런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테니까. 

 

『82년생 김지영』 소설에 이어 페미니즘 소설이 출간되었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모여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소설이다. 내가 한두 번쯤은 읽어왔던 작가들이 쓴 소설이라 반가움이 앞섰다. 구병모 작가의 출간된 소설은 거의 다 읽었으니 그 기대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조남주, 구병모 작가 뿐만 아니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김성중 작가까지 가세해 소설집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

 

「현남 오빠에게」같은 경우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온 여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선배가 사실은 자기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며 청혼 거절을 하는 편지 형식의 내용이다. 아마도 이 작품이 소설집의 첫 편에 있었기에 이 소설의 주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소설에 대한 예감을 했었다.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또한 우리와 우리 어머니 세대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이었다.

 

유진의 엄마 정순은 마치 엄마를 보는 듯 했다.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를 모셨던 엄마, 그렇다고 아빠한테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했다. 새로 결혼할 아들과 며느리에게 그 한을 풀어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기 속내를 딸에게 말했으나 딸 조차 그런 엄마를 피하는 형식이다.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하고 들어왔던 일들이라 공감이 더 컸다. 이외에 중학생 아들을 둔 갱년기에 접어든 한 여자의 이야기 또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엄마의 소원대로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여자애들과 성관계하는 걸로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위 다른 엄마들처럼 내 자식만 챙기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서로 합의하에 했다지만 여자 아이들이 아들을 좋아했으면 어쩌려나 걱정을 했다. 여자 아이들을 만나볼까. 보통의 엄마인 아들을 걱정하기 보다 오히려 여자애들을 걱정하는 점이 특별했다.

 

 

 

아들과 잔 여자 아이는 공부도 못하는 애들일 것이며 내 딸은 절대 그런 애가 아니라는 이중잣대를 재는 것들을 꼬집었다. 부모가 범하기 쉬운 오류가 내 자식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여자 아이에 대한 편견은 그릇된 행위다. 그러한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 차별은 존재한다. 현재의 내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의 세상엔 여성 차별이 없었으면 싶지만, 모를 일이다. 차별을 받았던 사람이 아이를 키우며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며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작가 노트에서 읽었던 말이 떠오른다. 무심코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게 더 쉬웠다는 생각들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자니 걸리는게 있었다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여자 형사는 섹시해서도 안되며 여성적이어서도 안된다는 우리의 편견을 꼬집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여자 작가가 쓴 어떤 장르에 관한 소설은 남자 작가가 쓴 것보다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자이면서도 말이다.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해서 단번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씩 변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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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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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대물림되는 것일까.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날 때부터 폭력적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게 없어서. 예를 들면, 남들 다 있는 부모가 없거나, 재산이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사랑받지 못하거나 할 때 드러나는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제 마음을 대변하듯 혹은 그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했던 것 같다. 매 맞는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제 아이를 매로 때리는 부모가 되듯. 어쩌면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자라서 부모가 된후 자식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때리는 사람들.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리는 것 같다.

 

 

여기, 한 사람의 폭력의 역사를 만났다.

그가 경험했을 처음의 폭력은 아마 열일곱 살의 엄마로부터가 아니었을까. 열일곱 살의 나이에 화장실에서 난 아이. 어린 엄마는 미혼모들이 기거하는 센터에 있었을 것이며,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느 누군가에게 입양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시점. 어린 엄마가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겠다며 데려가던 그 시점부터 아이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집도 직장도 없었던 엄마가 곧 자신을 버릴 것은 당연했으므로. 그런 그가 고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반 구성이란. 고아원 아이들이 몇명, 한 부모 아이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로 구성된 반이라니. 처음엔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느껴지는 차별 또한 그들의 피부에 금방 와닿았다.

 

 

수많은 차별 중에서 고아원 아이들만큼 차별받는 아이들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반 아이 중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있었는데, 애들이 고아원에 있는 아이라고 수군수군댔던 것처럼, 주인공 장태주의 반 아이들도 그렇게 수군댔다. 소심한 아이였던 장태주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 책 읽는 아이였다. 그가 어느 순간에 폭력성이 드러났던 건, 자기를 놀리는, 그러니까 태주가 기르는 새에게 해꼬지를 하는 아이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알수 없었던 폭력이 내재되어있었다는 것. 그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어느 순간 폭력의 한가운데, 아니 정점에 있었던 태주에게 중학교 입학은 또다른 폭력의 장에 빠지는 것과도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의 짱이니 하는 것처럼. 그를 자기의 발 아래에 두고 싶었던 아이도 결국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판박이였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 상납받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있다보니 그가 배운 것 또한 그런 것 뿐이었다. 내 발 아래에서 기어라, 뒤를 봐줄테니, 같은.

 

 

고아원과 폭력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에게도 인생의 단 한 사람, 그를 챙겨주는 사람을 만났다. 소년원에서 만난 담임 공민수가 그였다.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겼던 것이다. 그가 담임을 따라나섰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담임은 그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권투를 배우게 했다. 담임의 아내와 할아버지와 담임과 함께 네 사람이 밥상의 네 면에 앉아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의견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와 싸우며 즉 권투를 하며 돈을 버는 것도 가족과 함께 있으니 가능했고,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가족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담임, 누나,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가 승승장구할 때의 불안함이란.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대부분의 사람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힘들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가 꼭대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부터 불안했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소위 막장 같은. 우리가 수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많이 봐온 것 같은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소설이 좋다. 우리의 예상과 너무도 딱 맞아버리면 허무할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너무 신파같잖아. 요즘엔 어디서 봄직한 신파같은 소설 그다지 별로라고 말하지만,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걸, 그곳이 혹은 지옥의 불길이라도,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만 있었다면 그의 생은 달라졌을까. 불구덩이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면서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건 장태주라는 인간의 어떤 모습까지 보게 될까라는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부러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가 폭력을 다시 휘두르기 시작했던 것도 결국엔 가지지 못한 것,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가 빛의 한가운데서도 두리번거리며 찾아 헤맸던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그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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