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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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이 살해당했다. 미모의 전업주부 아내와 부동산 회사에 다니는 남편 그리고 두 아이들이었다. 살인범은 찾지 못했고 사건이 일어난지 일년이 지났다. 르포라이터가 찾아와 살해당한 부부의 주변 인물들에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르포라이터는 총 여섯 명의 지인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동네 이웃에서부터 아내와 요리 교실에 다녔던 친구, 남자의 회사 동기, 아내의 대학 동기, 대학의 동아리 친구, 대학 선배들이었다.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는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감정들은 무척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챕터의 마지막엔 한 여자의 고백이 실려 있다. 이 여자는 누구이며, 여섯 명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살해당한 가족과는 어떤 관계일까 의문이 들수 밖에 없다.

 

만약 지인이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면 우리의 마음은 안타까움이 먼저일까. 아니면 원한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 지나간 시간을 생각해보며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만약 그 사람이 부잣집의 자식으로, 내로라하는 학교만을 나왔다면. 그 사람은 그저 보통의 질문을 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무시하는 걸 알게 된다면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못하고, 남편이 좋은 직장에도 다니지 못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도 상처를 입는게 또한 사람이다.

 

르포라이터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며 왜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썼을까 내심 궁금했다. 이들이 말한 사람들 중에서 살인범이 있을까. 그렇다고 그 가족을 죽일만한 사람이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부유한 한 가족이 보여지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보여지는 것 보다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모든 것을 따라하게 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섯 명의 지인들로부터 듣는 살해당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다만 나는 한 여자의 고백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왔다. 가정 폭력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 사람이 가진 욕망의 비틀림이 갖는 폐해가 안타까웠다. 부모에게 버림받다시피한 남매. 사람에 대한 기대와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아 발버둥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제목이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었을까.

 

어떤 사람이 죽었을때 그 사람에 대해 타인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싶었다. 자기가 가진 기억들에서 서운했던 마음, 현재의 마음을 실어 대답한다는 것이 결국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텐데. 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다. 그저 침묵만이 죽은 사람을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한 여자의 고백은 아릿하다. 그녀의 고백은 소설의 처음과 맞닿아 있었다. 한동안 충격에 빠져 멍해 있었던 듯 하다. 그녀의 고백을 읽어오며,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를 드러내는 것과도 같음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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