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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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내가 읽어본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은 전원과 목가적인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제목부터가 작가와 어울리지 않은 『임신중절』라는 제목을 가졌다. 물론 어떤 역사 로맨스라는 부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궁금했다. 그는 어떤 로맨스를 말하는 것일까.

 

소설의 배경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특별한 도서관. 그곳을 지키는 남자와 그 도서관을 찾아 온 아주 아름다운 여자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그가 일하는 도서관이 어떤 곳이냐 하면, 아마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은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출판되지 않은 책을 가져오면 책을 받아주는 곳. 책은 글이 없이 그림만 있어도,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 책들은 이곳 도서관으로 왔다가 포스터에 의해 봉인된 지하 저장소로 옮겨진다. 남자는 아침 9시에 문을 열고, 밤 9시에 문을 닫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 도서관에서 기거한다. 하루도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는 곳, 밤늦게 혹은 이른 새벽에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는 곳이다.

 

그곳에 어느 날 한 여자가 찾아왔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쓴 여자였다. 그녀의 이름은 바이다. 자기의 육체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힘들어 숨어살다시피 했다. 그게 고통일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데, 도서관의 남자에게만은 편안함을 내보인다. 둘을 사랑했고, 밤이면 바이다가 도서관으로 찾아와 사랑을 나눴고 얼마 뒤 임신을 했다. 이들이 할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둘 사이엔 아직 아이를 가질만한 여유가 없었고, 합의에 의해 임신중절 수술하기로 했다. 당시에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이었기에 그들은 멕시코로 건너가 수술하기로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도서관과 바깥 세상과의 차이다. 도서관의 사서인 남자는 임신중절 수술 때문에 3년만에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사서는 도서관 안에서 세상밖으로부터의 모든 것을 차단한 채 살고 있었다. 이제 임신중절 때문에 멕시코의 티후아나로 가게 되었다. 세상밖에서 살았던 바이다는 사서에게 현실의 삶을 살라고 권한다. 세상 밖으로 나와 현실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도서관에 오는 책만 받던 사서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현실의 세계에서 임신 중절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길을 물어 병원으로 가야 한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바이다가 그를 인도한다. 사서에게는 도서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서관이 인생이었던 남자. 그런 남자가 병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경험한다. 그것도 네 번씩이나. 이로써 그는 도서관 밖의 삶을 보고 배운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던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사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임신과 낙태수술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새로운 관계로의 시작일 수도 있고, 관계의 단절도 될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회의식이 없는 예술이란, 돈 있고 배부른 귀족들의 사치일 뿐, 결코 인간정신의 고양이나 잃어버린 전원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 수 없을 겁니다. - 리처드 브라우티건

 

여러가지로 마음이 어지러운 때다.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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