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레드 에디션, 양장)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을 보았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앤의 재잘재잘거리는 목소리를. 상상속의 아이에게 하는 말들을. 앤이 하는 말들은 그 상황에서 비관적인 말이 아니었다. 상상속의 아이에게 말을 건네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괜찮아, 괜찮아, 하고. 고아원을 떠돌던 앤이 그린게이블의 집으로 오게 되었을때, 그린 게이블에서 사실은 일을 도와줄 남자아이를 원했다는 말을 했을 때도, 앤은 자신을 위로했다. 울고 싶은 상황이지만 울지 않았다. 오늘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희망적인 생각을 했다.
많은 소녀들의 애니메이션이었던 『빨강머리 앤』을 나이가 들어서 정작 빨강머리 앤의 나이 만한 딸이 있음에도 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이렇듯 앤을 좋아하는 이는 나를 비롯해 수많은 여자들의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다. 백영옥 작가 또한 『빨강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의 팬이라고 했다. 그녀가 우울할 때나 슬플때 힘들때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게 바로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이었다고 했다. 전편 애니메이션을 열번 이상은 보았다고 했다. 나도 파일로 된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있는데 몹시도 보고싶어졌다.

나는 백영옥이라는 작가가 『빨강머리 앤』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내심 궁금했었다. 페이스북에서 빨강머리 앤 그림과 인형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반가움이 앞섰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왜냐면 책 속의 삽화도 온통 빨강머리 앤으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작가가 하는 말 보다도 오히려 빨강머리 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반가웠다면 빨강머리 앤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리라. 작가가 힘들었던 시기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위로의 글들 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를 더 많이 사랑하는 쪽보다 덜 사랑하는 쪽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많이 애쓴다. 그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마뜩지 않아 하는 쪽이 자신을 버리면, 미숙한 그들로선 생존이 어려워진다. 아직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본능이 발달한 아이들은 그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118페이지)

얼마전에 이웃분의 리뷰에서 나이가 들어 다시 본 『빨강머리 앤』에서 마릴라가 더 눈에 들어온다는 글을 보았다. 나 또한 최근에 읽은 『빨강머리 앤』에게서 마치 나를 발견하듯 마릴라를 보았었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고 있기 때문일까. 아이가 없었던 그녀가 갑자기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여자아이를 키워야 했던 마음이 어느새 스며들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마냥 여리게만 보였던 작가도 『빨강머리 앤』에서 마릴라를 보았다고 하며, 앤의 성장기이며 마릴라의 육아기라고 표현한 점에 공감했다. 아이를 키우며 수많은 실패를 겪는 건 어쩔수 없다. 그럼에 마릴라의 성장담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정할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한다. 싫어하는 일을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기에 그런 말을 할 것이다. 반면 작가는 살짝 다른 말을 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잘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왜 반복하면 점점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일에 대한 특정한 태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태도'란 그 일을 좋아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185페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히 잘하는 게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다보면 더 잘할 수도 있기에. 소설을 쓰고 싶어 신춘문예에 원고를 보냈지만 계속된 낙방으로 힘들었을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작가에게는 『빨강머리 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나를 견딜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어리지만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앤이 하는 말들에서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작가 또한 빨강머리 앤이 건네는 말로 삶을 견뎌왔고 그녀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