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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라면은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음식이다. 어렸을 적 라면만큼 맛있는 것도 없었다. 한때는 매 주말
점심은 라면일 정도로 아이들과 함께 라면에 열광했었고, 지금도 밥맛이 없을때 한끼 식사로 라면을 끓여 먹고는 한다. 그리고 캠핑을 갈때면 꼭
라면을 챙겨간다. 집 안에서보다 집 밖에서 먹는 라면 맛은 정말이지 끝내준다. 캠핑을 하며 내가 끓이는 것보다 누군가 끓여주는 라면이 더 맛난데
최고의 라면은 후배의 신랑이 끓여준 라면이다. 김치를 약간 넣고 콩나물을 넣고 라면의 면은 살짝만 익혀 청양고추와 함께 끓인 라면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맛이다.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에 그만이다. 친구들 가족과 함께 간 캠핑에서 그 라면 맛을 보고 몇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할 정도다.
우리 아버지뻘인 작가가 아직도 라면을 드실까? 라는 물음으로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더했다.
제목에서처럼 그가 직접 라면을 끓여 드실까 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고, 책의 첫 장을 읽으며 작가에게도 라면은 그리움의 맛이구나 라고 느꼈다.
라면에 대한 추억 한두가지쯤 있을 것이다. 주린 배를 안고 먹었던 라면 한봉지. 먼 시골에서의 학교 관사에서 선생님이 끓여주시던 라면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로 나에게도 라면은 그리움의 맛이다. 작가에게도 라면은 그리움의 맛, 추억의 맛이었을
것이다.
김훈 작가의 이번 작품 『라면을 끓이며』는 지금은 절판된 『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이라는 작품 중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최근에 쓴 산문을 엮어 만들었다. 첫 장에서부터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좋은 직장을 다니고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밥벌이의 지겨움이 있을까 싶었다. 작가가 말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 모두는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밥벌이의 지겨움과 힘겨움에 허우적거리고
있으니까.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70페이지)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삶의 비애인 것 같다. 밥벌이를 하므로써 하고 싶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가야하는 것. 작가는 밥, 돈, 몸, 길, 글에 대한 다섯 가지의 챕터를 정해놓고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행을 떠나는 길 위에서의 생각들, 자식에 대한 애틋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들이 글
중간중간에까지 보였다. 그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또 어떤가. 작년 4월에 일어난 세월호에 대한 생각도 엿볼수 있었다. 한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에서 나온 만원짜리 지폐 6장을 바라보며 통곡의 글을 쓴 심정에 우리 또한 눈시울을 붉힐수 밖에 없었다. 한 소방관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도 애써 슬픔을 참고 있는 글이었다.
작가의 글은 묵직했다. 글을 음미하고 문장을 음미하다보니 사흘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다 읽고
나서도 다시 읽고 싶은 문장들이고 글이었다. 그의 주옥같은 문장들을 만나보자.
죽을 생각 하면 아직은 두렵다. 죽으면 우리들의 사랑이나 열정도
모두 소멸하는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삶은 살아 있는 동안만의 삶일 뿐이다. 죽어서
소멸하는 사랑과 열정이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들볶아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랑과 열정으로 더불어
하루하루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은 아니지만, 그래도 복 받은 일이다.
(137~138페이지)
가을은 칼로 치듯이 왔다. 가을이 왔는데, 물가의 메뚜기들은
대가리가 굵어졌고, 굵은 대가리가 여름내 햇볕에 그을려 누렇게 변해 있었다. 메뚜기 대가리에도 가을 칼로 치듯이 왔다. 그것들도 생로병사가
있어서 이 가을에 땅 위의 모든 메뚜기들은 죽어야 하리. 그 물가에서 온 여름을 혼자서 놀았다. 놀았다기보다는 주저앉아 있었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별은 가르쳐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썰물 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224-225페이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는 듯 했다. 그의 글은 그처럼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고 이 가을날 오래도록 우리 마음을 달래주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듯, 그의 글에서 만나는 일상도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음을 그의
글에서 느꼈다. 간결한 문장에서 그의 생각들을 읽고 다시 그의 문장들을 더듬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