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 정동진에 가면 - 정동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순원 지음 / 북극곰 / 2015년 8월
평점 :
몇 년전 가족들과 함께 2박 3일간 강원도 여행을 했었다. 강릉에 여장을 풀고 강릉 주변을 도는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때 인걸로
기억한다. 정동진의 소나무를 바라보고, 바다를 거닐었다. 여름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양말을 벗고 바닷가에서 파도를 따라 달렸고 발도 담갔었다.
문득 아직 어렸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려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즐거운 여행이었었는데. 오로지 아이들만을 위한 여행. 아이들에게
온통 시선이 가 있었던 때였다. 아이들의 어렸을적 모습도 떠올려보며 그때가 좋았음을 다시한번 느껴본다.
우리들의 정동진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이순원 작가를 알게 된게 『19세』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고, 그다음에 만난 작품이
『첫사랑』이라는 작품이었다. 『첫사랑』에서 이순원 작가는 우리 모두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등학교때 예쁜 여자아이에 대한 첫사랑,
오랜만에 동창회를 하게 되며 첫사랑에 대해 궁금해하고 가슴아파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우리 모두의 첫사랑은 어쩌면 추억과의 조우였던 것.
이번에 읽은 『그대 정동진에 가면』 또한 우리 안의 첫사랑에 대한 그 다른 이야기라고 해도 되겠다. 정동진에 대한 추억. 고작 몇 년 살지
않았지만 정동진에는 추억이 있었다. 주인공 석하가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 그리고 석탄을 캐는 아버지, 힘겨운 삶을 살았음에도 정동진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던 건 아마 그 여자아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석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동진이라는 이름보다는 '정동'으로 불렀던 곳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었다. 서울에서의 정동쪽이라 하여
정동이라 불렸던 곳. '모래시계'라는 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끌려간 곳이라 하여 정동진과 그녀가 잡혀간 소나무 때문에 많은 관광객을
불러오지만 어렸을 적 주인공이 살았던 그 곳의 정취는 찾을 수 없어 아쉬워하는 모습들을 말했다. 그리고 첫사랑 미연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도 정동진에 대한 그리움은 미연에 대한 그리움과 동질의 것이었다. 펼쳐진 바다,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추억속의 정동과 변질되어가는 지금의
정동진역. 저 멀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헌화로의 한 카페의 풍경. 이 모든 풍경들은 추억속의 그곳과 같았으면 하는 주인공의 바람이 들어있었다.
우리도 그렇잖은가. 추억속의 장소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 첫사랑이 그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하듯, 추억의 장소도
마찬가지이다.
나로서는 누군지도 모를 이 글을 읽는 그대, 언제고 정동진에 가거든 지금보다 조금은 더 경건한 마음을
가져주길 바란다. 내가 자랐던 한때에도 그랬ㄱ,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바뀐 지금도 그곳엔 나와 그대가 알지 못할 그곳 사람들의 힘겹고도 아픈
삶이 있다.
(211페이지)
이순원의 소설은 마치 자전소설처럼 읽혀졌다. 광부들의 아프고 힘겨운 삶에 대한 기억들, 자신의 마음속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마음, 잠시 떠나온
곳이었지만 늘 그리움의 장소였던 정동진.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들이 우리의 마음속 장소와도 닮았다. 오랜만에 정동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던 것처럼. 다시 가지 못할 아이들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정동진에 대한 기억에 잠시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운 정동진, 그리운
아이들과의 추억. 다시 오지 못할 그시간들에 대한 애틋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