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모두는 추억의 물건 한두 가지쯤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추억의 물건은 무엇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집에 두기 곤란한, 아니 누군가가 보면 좋지 않을 물건이 있다면 어딘가에 숨겨놓고 싶을 것이다. 만약 집에 있다면 누군가 찾아버릴까
겁이 날 것이기도 하기에 숨겨두고 싶은 물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때 보관가게가 있다면 참 좋겠다. 하루 100엔의 가격으로 무엇이든지 보관할
수 있는 가게. 보관가게 주인장은 앞이 보이지 않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알려주는 이름 하나로, 자신에게서 나는
체취 하나로 물건을 맡길수가 있다. 100엔만 주면. 다른 것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물건을 보관해준다. 때로는 처치하고 싶은 물건일 경우 하루
혹은 며칠 보관비만 내면 주인장이 알아서 처분도 해준다.
보관가게 주인장은 어쩌면 추억을 보관해주는지도 모른다. 버려야 하지만 차마 버리지 못한
물건들, 그 물건들에는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물건이라도 받아주는 주인 때문에 물건을 보관하는 사람들은 보관 가게를 찾는다.
한 번 왔다 가는 사람도 있고, 꽤 여러번 오는 사람도 있다. 혹은 몇 년만에 찾아와 추억의 시간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점가의 끝 쪽에
위치한 보관 가게는 사람들이 찾는다.
보관가게 주인은 물흐르듯 고요한 사람이다. 깜깜한 밤이 되어도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밤을
의식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점자 책을 읽고 있다. 그가 가게를 여는 시간은 오전 7시에서 11시까지, 오후 3시에서 7시까지다. 그 외의 시간에
그가 뭘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에 100엔을 받고 물건을 보관해 주는 가게의 주인을 바라보는 화자는 보관가게의 오래된 쪽빛 포렴, 자전거
집의 물색 자전거, 과자를 진열해 놓던 유리 진열장, 가키누마 마미, 사장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다. 이곳 보관가게에 맡기는 물건들은
자전거나 유서, 이혼 서류, 값비싼 빈티지 오르골, 책, 냄비 등이다.
보관가게에 물건을 맡기며 좋아지리라는 것을 기대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열
살의 여자아이가 부모의 이혼서류를 몰래 맡겼다가 찾았는데 그로 인해 여태까지도 이혼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그 하나였다. 그리고 유서라며
가져왔다가 다시 가져가기를 반복했던 쥐색 양복의 할아버지, 눈먼 기리시마 도오루에게 점자책을 만들어 주었던 아이자와 씨까지. 그들은 다양한
사연들을 담고 보관 가게로 들어왔다.
보관가게는 그들의 사연들을 들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점이 무엇인가. 보관품을
읽거나 볼 수 없고, 손님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 사생활이 보장되어 안심하고 물건을 맡길수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사연들을 담아 보관 가게로
들어와 말없이 앉아 있는 주인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때로는 잘 모르는 이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일이 마음을 더 편안하게도 하는 것. 누군가
내 사연에 대해 공감하고 말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반쯤은 해결되는 것 같지 않나. 보관가게 주인에게 하루 100엔의 돈으로 물건을
맡기며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위로의 시간이었다. 위로의 시간 다음에는 앞으로의 삶에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실제로 몸이 더
좋아지기도 했다. 무심코 건넨 주인의 한 마디에 오랫동안 멀리해 왔던 사람과도 화해하는 시간. 이 모든게 말없이 들어주었던 보관가게 주인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서 주인은 여기에서 기다립니다. 보관가게는 기다림이
일이니까요.
분명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55페이지)
그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무심한 한 마디에 따뜻함이 묻어나는 곳.
보관가게가 일으키는 힘이었다. 아, 책의 말미에 상큼한 비누 냄새를 풍기며 책을 맡겼던 한 아가씨에게 느끼는 심장의 두근거림이라니. 서른일곱
살의 기리시마 도오루에게도 드디어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읽으며 번지는 미소. 그렇다. 보관가게는 기다림이다.
물건을 맡기고 찾아가기를 기다리는 것. 마음을 털어놓고 간 사람에게는 다시 돌아오고 싶은 장소. 그들을 기다리는 주인. 어쩌면 이곳은 소중한
추억을 보관하는 가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