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모습을 감추고 내가 하고 싶은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 누구 눈치볼 필요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기간은 아주 짧았고, 영원히 투명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아주 잠깐의 즐거운 상상이었다. 투명인간이라고 한다면 영화속에서나, 문학 작품속에서나 나타나는 것일테다. 투명인간이라는 건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므로.

 

  어느날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남자가 있었다. 그것도 고대하던 연극 무대에서 첫 주연을 맡았던 때였다. 공연을 막 하려는 찰나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왜, 갑자기, 무슨 이유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토록 염원했던 연극무대에서의 주연인데. 안타깝게도 연극은 조연이었던 이가 이끌어가고 있었고, 그는 투명인간이 되어 사귀던 여자친구 수이와도 멀어지게 되었다. 누가 형체도 없는 자기랑 오래도록 만날까. 같이 살고 있던 부모님마저도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를 견디지 못해 시골로 내려가버렸다.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그는 투명인간만이 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바로 누군가의 뒤를 쫓는 일, 예를들면 불륜을 저지른 사람을 뒤쫓는 일이었다. 

 

  그리고 앞집 여자 안나라는 여자와 만났다. 토토라는 고양이를 키우는 안나는 그가 문을 열고 나갈때마다 나오고 그가 엘리베이터를 피해 계단을 이용하면 계단 중간을 지키고 서 있기도 했었다. 그가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그가 대꾸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말을 하는 여자, 투명인간인 그도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여자였다. 

 

  어느 날 그에게 초대장이 도착했다. 투명인간들의 모임으로의 초대였다. 그들에게 다비도프 쿨워터맨으로 불려졌다. 모임에 나올때는 다비도프 쿨워터맨이라는 향수를 뿌리고 올 것. 투명인간인 그들에게 정해진 향수를 뿌리는 일은 그의 고유한 존재를 알리는 표시였다. 모두 각자의 향수를 뿌리고 향수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모임 장소에 온갖 향기들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투명인간들에게 다비도프라 불려졌다. 

 

 

 

  책 속의 이름들은 모두 향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갑자기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그의 헤어진 여자친구 이름은 수이였다. 안나수이의 향수를 뿌려 수희라는 이름 대신에 수이라고 불렀다. 그의 앞집 여자는 또 어떻고. 안나수이의 안나라는 이름을 따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곁에서 있는 한 남자 또한 샤넬 NO.5를 뿌리고 다녀 샤넬 NO.5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투명인간인 주인공은 불투명인간으로의 회귀를 위해 은행에서 돈을 슬쩍 해온다던가 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되면 아무런 제약없이 돌아다니고 여러가지로 편할 것 같았지만 투명인간들에게도 애환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주변에 투명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것.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도 볼수 있겠다는 불안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안나도 그런 말을 했다. 동등하다는 것은 상대방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볼 수 없는데 상대방은 나를 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 볼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컸을수도 있겠다.

 

  즐거운 상상을 해볼까.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그래서 향수를 써야 한다면 내가 쓸 향수는 내가 고르고 싶은데. 만약 투명인간의 모임에서 다른이가 사용하지 않는 향수를 마음대로 지정해주면 싫을텐데. 나도 샤넬 NO.5처럼 내 마음대로 롤리타 렘피카 포비든 플라워 오드 퍼퓸을 뿌리고 다닐테다. 나란 존재를 다른 이가 지정해 주는 향수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다니고 싶으므로. 그러다가는 투명인간들의 모임에서 강퇴 당할지도. 제 마음대로 하고 다닌다고.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은 거냐는 질문세례를 당할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유쾌한 기분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