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해줘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다. 그 사랑이 상처가 되는 줄 알면서도 사랑속으로 빠져드는게 사랑이 아닐까. 그게 남녀간의 사랑이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든. 어쩌면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상처받았던 것, 그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고, 그
상처를 표출할 수는 없었지만 현재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걸 상처라고 말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 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주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상처는 상처로 대물림 되는 것인가.
『기억해줘』는 임경선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다. 저자의 작품이 꽤 나온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이 소설로 임경선 작가를 처음 만났다. 첫느낌을 말하자면, 뭐랄까, 사랑은 처음부터
꼭 같이 해야지 사랑은 아니라는 것. 가족으로 묶이는 것과 가족으로 묶이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은 다른 사랑을 보듬을 수도 있다는
것. 내 사랑법과 맞지는 않지만, 이것은 한 나라에 머물러 있지 않은, 먼 시간을 거쳐와도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라볼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달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 순간을 위해 사랑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해야겠다.
내가 하는 사랑법이 다 옳지는
않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성격대로 완벽한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속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까봐 무서워 상처를 받지 않은 척, 사랑에 쿨한 척 하겠다는
것이다. 책 속의 주인공인 해인도 그랬다. 사랑하는 유진이 자신의 화실에서 나갔다 다시 들어와도 아무런 말없이 가는 걸 지켜봤고, 훌쩍 시간이
지난 뒤 들어와도 막지 않았다. 이야기는 한 연인이 헤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여자가 다른 사람에게 열정을 품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짐을 싸서
나갔고, 해인은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족을 밝히자면, 많은 소설에서
해인이라는 이름은 여자로 인식되어졌다. 해인과 유진이라는 두 이름 중에서 나는 해인이 여자, 유진이 남자일거라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이름에
갖는 편견이었다. 자세히 집중해서 읽다보니 해인이 남자, 유진이 여자였다. 유진이 떠나간 뒤 해인은 가족일 때문에 미국의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자신의 첫사랑, 아픈 사춘기를 보냈던 그 시간 속으로 젖어든다. 사랑해마지 않았던 안나와의 만남이었다. 백인들이 거의 거주하는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안나와 해인은 서로 의지하며 그 시절을 함께 보냈다.
기다림은 기쁨이다. 누군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도 기쁘지만,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부터가 이미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 같았다. 안나는 약속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책을 읽으면서 기다리는 것을 순수하게 기쁨으로
느꼈다.
그런가
하면 뛰어가는게 기쁨인 남자아이도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닌데 항상 저만치부터 해인은 참 열심히도, 온 힘을 다해 뛰어왔다. 기다려준
사람에게 성의를 다하려는 것처럼.
(81페이지)
뉴욕에서 자신이 머물렀던 거리를
걷고 있다가 해인은 안나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십칠 년 만이었다. 빼빼 말랐고 까만색 눈망울이 유난히 컸던 안나는 이제 예전 안나 엄마의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고, 며칠을 같이 보내곤 했던 엄마의 모습을 때론 이해할 수 없었고, 어느
때는 인정하기도 했던 안나였다. 늘 엄마때문에 자신히 피해본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들을 꿋꿋하게 이기려 했던 안나의 모습을 생각한 해인은
안나가 반가웠다. 해인 또한 사랑하는 엄마를 위해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었을 뿐이었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가까워졌던
두 사람은 상처때문에 멀어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에서는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사람에게 상처 주는 운명을 떠안고 살아가는지도
몰라.
(205페이지)
소설 속 주인공 해인과 해인의
엄마 혜진, 안나와 안나의 엄마 정인은 모두 사랑을 갈구했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사랑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건 그들만의 사랑법이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아파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