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은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영화나 드라마로도 자주 만들어 지지만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형식의 글로 나타난다. 마치 변주곡처럼.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녀의 책이 꽤 많이 나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도, 읽어본 작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의 모티프를 따온 작품이 아니었으면, 난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은
유럽의 중세 사상에 빠져있는 에스파냐 귀족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라는 이름을 가진 귀족이다. 반면 푸른
수염의 젊은 아내는 직업때문에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아름다운 사튀르닌으로 나타났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게 넓고 깨끗한 집, 더구나 시세에 비해 저렴한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세입자를 구한다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저택으로 간 사튀르닌은 열다섯 명의 대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집을 구하고 있었고, 그 집에서 세를 살았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 여덟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집을 구하는 사튀르닌은 그 집을 포기할 수 없었고, 옆에 앉은 여자의 말처럼
대기실에 있던 여자들중 가장 젊고 아름답다는 이유로 그녀가 저택의 새로운 세입자가
되었다.
사튀르닌도 궁금해 한
사항이지만, 나도 제일 궁금했던게 돈 엘레미리오가 여덟 명의 여자들을 어떻게 했느냐 이다. 물론 사튀르닌이 첫날 그를 마주했을때 그가 주의해야
할 것을 한 가지 말한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13페이지) 라고.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라 '설마 나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그 문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여덟
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그렇게 행동했고,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에게 그렇게 경고했다.
어디서나 문제인게 사람의
호기심때문이다. 금기를 하면 할수록 금기의 문을 열어보고 싶은게 인간의 호기심이다. 그 먼 옛날 그리스로마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도 마찬가지이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을 열어볼 수 밖에 없는게 인간의 호기심 혹은 욕망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아내를 엿보지
말라고 했어도 남편은 아내를 엿보고 말아 사람이 되지 못한 천년묵은 여우이야기도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