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맨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6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내가 모르는 작가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 시점이 있다. 이 책 『그랜드맨션』도 그랬다. 처음 책 표지를 만나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토록 짜릿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다니.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하고 예상하지만, 그 예상을 역시나 뒤엎고 마는, 뒤통수 한 대를 맞는 듯한 느낌이랄까.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을 이제야 만나다니. 꽤 많은 작품을 펴낸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몇 권 되지 않은가 보다. 작가소개란에서 보이는 그의 작품들 '도착 시리즈' 나 '~자 시리즈' , '교실 시리즈'라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 무겁지 않으면서도 삶의 희노애락을 괴담속에서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되어있고, 그랜드 맨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져있다. 이야기의 화자만 다를 뿐, 등장 인물들은 옆집이거나 윗층집 등 이웃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형식이었다.

 

그랜드맨션은 지은지 30년이 지난 맨션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곳이라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독거노인, 실직자 등 돈이 없어서 임대료를 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직장을 퇴직한 후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연금을 받고 있는 노인들은 그 연금마저도 아끼며 저축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한 현금을 은행에 저금하지 않고 장롱속에 넣어두는 노인들도 있다. 이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 돈을 노릴 수 밖에 없는 법. 이웃집에 산다는 이유로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그 집안의 동태를 파악하기도 하고, 그 사실들을 주민들에게 알리기도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전화 사기가 노인들에게 많이 이루어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인지 전화로 가족중에 누군가가 다쳤다며 돈을 갈취하기도 하는 것이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에게 이처럼 사기를 치는 사람들 역시 같은 그랜드맨션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집에서 악취가 나 관리인에게 신고하고 들어가보니 욕조에 아내의 시체를 숨겨놓고 있다거나, 할머니가 죽은지 오래인데도 산 것처럼 꾸며 부정으로 연금을 수급하는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다. 또한 오래된 4층짜리 맨션 앞에 10층 건물의 새로운 그랜드맨션 2관이 들어서기도 해, 그랜드맨션 1관에 사는 사람들은 일조권 때문에 시위를 하려고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분양 맨션이 아닌 임대 주택의 한계인 것이다.

 

 

일곱 편의 연작으로 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심코 읽었다가는 큰코를 다칠수 있다. 작가의 트릭에 범인을 찾다보면 작가의 화자가 범인인 경우도 있고, 현실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사이에 그건 과거의 이야기일뿐 시간은 어느 새 삼십 년 후가 훌쩍 지나있는 경우가 많다. 죽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은 삼십 년을 즉신성불(살아있는 채 부처가 된다는 말)로 앉아 있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의 허를 찌르는 단편들의 결말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놓을수 없고, 긴장하며 읽어야 한다.

 

마지막 단편 「리셋」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이네코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늙는다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녀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잊어버리기 전에 지금 들은 이야기를 메모해 남겨두기로 했다.' (352페이지)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방화사건을 목격하지만, 치매때문에 아침만 되면 모든 일은 잊는, 즉 기억이 리셋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담았다.

 

 

이처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그랜드맨션에도 이웃을 배려하는 사람들,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담과 괴담 속에서 삶의 희노애락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그랜드맨션 2관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살텐데, 이곳에서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 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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