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사랑이란 것, 참 오묘하다. 사랑이야기는 더 오묘하다. 각자의 사랑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 누구도 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다른 사랑을 하고, 다양한 모습들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을 한다는 것, 오로지 내 사랑이 최고고 다른 사람의 사랑은 그리 중용하지 않는 법이지만, 아버지의 옛사랑을 바라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느 때보면 엄마나 아빠가 누군가를 그렇게 간절히 사랑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엄마 아빠로만 계실 것 같았는데, 한때 우리 엄마도, 아빠도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했을거란 생각을 문득 해본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했지만 부모가 허락해주지 않아 이별을 하고 엄마를 만났다는 아빠. 결혼을 하고서도 그 여자를 잊지 못해 편지를 쓰는 아빠를 바라보았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동생을 통해서 들었을때, 그저 우리 아빠 너무 했네,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안타깝다. 평생을 등만 바라보았을 마음이 문득 느껴졌다.

 

우리엄마처럼 결혼해서 살면서 늘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던 줄리아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수도 있었겠다. 그때는 이해못했겠지만 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는 줄리아의 마음도 울컥했으리라.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미얀마에 도착하고서부터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 늙수그레한 남자가 있었다. '줄리아, 사랑을 믿나요?' 라고 물었다.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다며 줄리아를 알고 있었고, 4년을 기다렸다는 우 바는 줄리아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줄리아의 가족이 아버지의 20년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시간들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장님이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랑, 두려움보다 강한 사랑,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사랑, 시간이 흐르면 쇠락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하고, 우리를 번성하게 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사랑을 뜻해요. 이기심과 죽음을 뛰어넘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말하는 거예요. (12페이지)

 

 

누구에게나 사랑은 간절한 법인데, 책 속에서 보는 줄리아의 아버지의 사랑은 더욱 간절해보였다. 앞이 흐릿하게 보인 장님과도 같은 남자 아이와 걸어다니지 못하고 기어서 다니는 여자 아이의 영혼을 나누는 사랑이야기는 더욱 간절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거역하고 싶었겠지만, 줄리아 또한 아버지와 아버지의 첫사랑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며 과거의 시간 속으로 향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버지는 첫사랑을 찾아 여기, 미얀마로 오셨던 것일까.

아버지의 모습이 여기 어딘가에 있을 듯 한데, 우 바는 아직 아버지의 어린 날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 바의 말 속에서 아버지는 아이에서 점점 소년이 되어갔다. 아름답고 총명한 미밍과 앞이 보이지 않았던 틴 윈의 사랑은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사랑이었다. 서로에게 발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눈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면들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보이는 것 이상의 마음속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랑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소리가 발달되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틴 윈은 동물들이 내는 소리,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리는 소년이었다. 틴 윈이 미밍을 찾아 갔던 것도 미미의 심장 소리를 듣고서였다. 심장 박동이 들리는 소리를 따라 갔던 곳에 미밍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로맨스 소설을 만났다.

아버지의 사랑, 묻혀 둔 아버지의 이십 년의 진실이 이곳 미얀마에 있었다. 아버지의 흔적,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던 이곳에서 줄리아는 아버지의 이십 년을, 숨겨두었던 진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눈물을 흘리는 줄리아의 모습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잊지 못했을 첫사랑과, 아버지 나름의 방식으로 어머니와 줄리아, 오빠를 사랑하셨을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이 울컥했다. 오십 년을 기다리는 사랑 또한 기적이라 할 수도 있다. 아버지가 자주 들려준 이야기에서 가장 좋아했던 '왕자와 공주 그리고 악어 이야기' 의 마지막처럼 사라진 이들이 결말도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꿈꾸는 것도 동화이고, 영혼을 바쳐 사랑하는 것도 어찌보면 동화이다. 사랑은 이처럼 동화가 되어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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