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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책으로 나오기 전 표지를 처음 보았을때부터 느껴지는 건 두려움이었다.
어두운 색 후드를 뒤집어쓴 거구의 남자, 얼굴도 잘 보이지 않고 어두운 얼굴 너머로 풍겨나오는 강한 눈빛에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악마를 보는 느낌이 이럴까. 제목 마저도 『지옥계곡』이었다.
우리 대부분은 욕심을 조금씩 감추고 살아간다. 친구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무관심하거나 등돌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어떤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닥쳤을때, 자신의 심연으로 침잠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괜찮아 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버려 둬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덜 고통스럽고, 덜 신경쓰고, 결국, 곁에 있는 친구가 떠났을때에야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보며 그때 왜 손 내밀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같이 산악 등반을 하러간 친구들. 어느 한 사람이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어 올라가지 못하면, 같이 간 팀의 누군가는 그를 부축해 보살펴야 하는데도, 정상에 올라가겠다는 욕심으로, 팀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친구를 맡기는 일은 옳지 못하다. 낯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친구를 맡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물론 내 개인적 생각으로도, 산에서 등산하다 만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 전체가 좋은 사람이 아니므로 100% 믿을 수는 없지 않겠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지옥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 힘겹게 산에 오르는 여자가 있다.
등산화를 제대로 챙겨 신지 않았는지 자꾸 비틀거리고, 등에 맨 배낭은 빈 듯 하다. 그리고 산악구조대원으로 일하는 로만은 어느 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런 날씨에 조난을 당하기 쉬우므로 발자국을 향해 간다. 저만치서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한 여성이 서 있다. 곧 뛰어내리려는 것처럼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조심조심 그녀에게 달려가자 그녀는 뛰어내리려 하고 로만은 겨우 그녀의 팔을 붙잡는다. 살려면 그녀가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녀는 로만의 손가락을 움직여 풀려고 한다. 그리고 로만을 바라보는 눈빛은 굉장히 두려운 눈빛이다. 결국 손가락을 풀어 여자는 뛰어내리고 로만은 밤마다 그 여자의 두려운 눈빛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후 그녀의 친구들 산악 등반 팀의 일원이었던 이들이 한 명씩 죽기 시작한다. 누군가에 의해.
지옥계곡으로 떨어진 여자는 라우라 바이더였고, 마라 란다우는 그녀의 절친이었다.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수 없는 마라는 팀과 함께 등반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라우라의 부모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 사건이 있었던 때부터 라우라는 친구들을 피하기 시작했고, 같은 팀의 연인이었던 리키조차도 피했다. 친구들은 자신의 일 때문에 라우라를 보살피지 못했고, 라우라는 고립되어 있었다.
책은 라우라의 친구인 마라와 산악구조대원인 로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라우라의 연인이었던 리키 슈뢰더와 베른트 린데케, 아르민 촐테크의 주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한 장이 끝날때마다 정신이 약간 이상한 듯한 한 남자의 1인칭 독백이 이어지고 있었다.
날씨가 좋지 않을때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지옥 계곡처럼, 이들 모두는 위태위태하다.
지옥 계곡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현재의 우리, 위태위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듯도 하다. 아찔한 계곡이 펼쳐져 있는 곳, 지옥 계곡이라 불리는 그곳에 한 사람이 비밀을 봉인해버리면 영원히 찾을 수 있을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너무 늦게야 진실을 알려준 라우라의 말없는 고통이 지옥 계곡으로부터 들려나오는 듯 하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책은 『사라진 소녀들』로 먼저 만났었다.
시각 장애인의 실종을 두고 낯선 자를 조심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주었던 심리 스릴러로서 강한 긴장감을 주었었다. 『지옥계곡』또한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가족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고, 연인에게도 기댈수 없었고, 친구들에게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던 한 여자가 한 정신 이상자로 인해 어떻게 고통받고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었다. 또한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추악한 진실은 또 어떤가. 모든 진실을 가지고 지옥계곡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던 라우라의 고통이 느껴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가면 속에 감춰진 그들의 추악한 내면에 몸서리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