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버스에 탔을 때 들려오는 아이들의 욕설에 놀랜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80%는 욕설이었다. 욕설을 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렇게 욕설을 입에 담고 있었다. 욕설이 자신들의 얼굴에 침뱉기라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나는 그후 우리 아이들에게 제일 싫어하는 게 욕설이라고 말했었다. 사춘기의 아이는 친구들도 다 쓰는데 하면서도 집에서는 쓰지 않았다. 지금도 제일 싫어하는게 욕설이긴 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는 말에 눈쌀을 찌푸리기도 하는데 요즘 영화나 책에서는 욕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때가 많다. 그런 것들도 처음엔 영 거슬리더니 자주 들으니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었다.
다만 책에서 욕설이 난무할때 참 난감하긴 하다.
예를 들면 씨.발. 같은거. 이 단어를 읽는 것과 입밖으로 내뱉는 것,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쓴다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 하는 말이고, 엄마를 가리켜 하는 말이기도 해서, 또 이 책의 리뷰에서는 이 단어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겠다.
자신을 앨리시어라고 하는 여장 부랑자가 있다.
지명의 유래가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고모리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에겐 나이 든, 늙은 아버지가 있고, 젊은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동생이 있었다. 고모리에서 단층집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집을 짓고 있었고, 공사장 한쪽의 식용으로 개를 키우는 개장옆 콘테이너에서 그들은 머물고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머니가 꿈을 꾼 날이면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무지막지하게 맞는다. 때리면서 횟수를 세라고 하면서 때리는데, 그 폭력앞에서 늙은 아버지는 무심할 뿐이다. 모른척하며 술을 마시러 자리를 피해버리고, 동네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폭력을 방치할 뿐이다. 폭력 속에서 자라나는 소년들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 고미와 함께 고미의 아버지가 하는 고물상 곁에서 논다. 고미와 함께 구청에 가서 가정폭력상담센터로 가지만 그마저도 그들에겐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앨리시어는 잠이 오지 않는 어린 동생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그가 했던 이야기 중 네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네꼬는 둥근 생물로, 네꼬의 심부에는 고래 한마리가 살았다 한다. 고래를 잃고 떠다니다가 네꼬에게 차가운 것이 달라붙었다는 거다. 털투성이 조그만 것들이 네꼬의 표면에서 돌아다니다가 그것들은 교미를 하고 계속 새끼를 낳고 있었다. 그들은 배꼽을 누르며 계속 사라지고 네꼬는 밝은 갤럭시를 지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갤럭시는 은하수라는 뜻으로 앨리시어는 어린 동생에게 은하수를 건너는 네꼬의 이야기를 해주며 어린 동생을 꿈 속으로, 편안한 잠으로 이끌게 해 주는 것이다. 앨리시어는 고모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곳에서 지내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버린 고모리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으며, 토끼굴을 찾듯 그곳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앨리시어는 끝없이 내리는 비를 생각한다. 단단하고 길쭉한 침처럼 지상을 향해 꽂히는 빗줄기다. 비가 내려 좋다. 이렇게 비가 올 때 이 방은 안전하게 고립된다. 바깥이 비로 촘촘하게 닫혀 있으므로 누구도 무엇도 이 방에 접근할 수 없다. (26페이지)
별과 우주가스가 모인 곳은 붉은 머리카락 다발 같고 보라색 꽃 같고 용맹한 말의 머리 같고 노랗고 파란 눈동자 같을 것이다. 지금도 부지런히 팽창하고 있을 것이다. 팽창하고 팽창해서 별들 간 간격이 엄청나게 멀어져버린 갤럭시에서 앨리시어는 한 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점 먼지도 되지 않는 앨리시어의 고통 역시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63페이지)
그대에게 앨리시어의 계절에 관해 말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환등기처럼 돌아가고 돌아오는 사계에 관해 말이다. (88페이지)
앨리시어는 그 거리에서 오래전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의 냄새를 피우며, 흔적을 남겨놓고 그렇게 사람들 곁에서 오래전 고모리에서 살던 일을 기억하며, 매일매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책은 얇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책으로 경장편이라고 표현되는 책이다. 얇은게 아쉽긴 하지만, 책을 한번 읽고 다시 읽었는데 읽을수록 마음에 차오르는 책이다. 고모리가 없어진 그곳을 헤매고 있는 소년 앨리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아픔이 전해져 온다. 여장을 하고 있는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어머니와 흡사한 앨리시어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자신의 모습도 씨.발.년.으로 그 거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그 거리에서 나는 앨리시어의 냄새를, 흔적을 찾을 것 같다. 그가 그 거리에서 꿈을 꾸었던 것처럼, 그 거리에서 앨리시어의 꿈을 꿀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