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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ㅣ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평점 :
처음 직장을 다니던 서고에는 내가 들지도 못할 '국어대백과사전'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볼때 아마 몇천 페이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검정색 가죽 장정으로 된 책을 나는 시간이 날때마다 사전을 들여다보며 말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단어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자주 서고에서 시간을 보냈다. 낱말을 안다는 것, 그로 인한 설명과 예문을 보는 일들이 아주 즐거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사준 것도 사전이었다. 아이들은 내 생각만큼 사전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되도록이면 사전을 찾아보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또한 이십대 시절에 좋아하는 팝이 있었다. Kool And The Gang의 'Cherish'란 곡을 좋아했다. LP판이 늘어져라 듣다가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고는 그 뜻이 '~을 소중히 여기다, '을 마음에 품다', '(마음속에) 간직하다' 라는 뜻이 있어 한동안 'Cherish'란 단어를 무지 좋아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단어나 문장을 검색하면 그에 관련된 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또한 무거운 종이사전을 가지고 다니지 않게 학생들에게는 전자사전이 보편화되어 있다. 스마트폰도 가세해 영어 단어를 찾을 수 있는 앱이 있어 자주 이용하게 되고, 나는 백과사전 앱을 받아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검색해 보고 있다. 이처럼 간편한 기기들이 나와 종이 사전을 들춰본 적이 언젠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내가 좋아하는 미우라 시온의 『배를 엮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15년을 할애해 사전을 만들고, 단어 하나를 만날때마다 메모하며 다른 사전과도 비교해보며, 자신이 갖고 있는 열정과 시간 전부를 쏟아 부어도 후회 없는 것이 사전이라며 온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사람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위에 떠오르는 작은 빛을 모으지. 더 어울리는 말로 누군가에게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만약 사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드넓고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바다를 건너는 데 어울리는 배를 엮다. 그런 생각을 담아 아라키 씨와 내가 이름을 지었죠. (36페이지)
위 인용글에서처럼 사전이라는 배를 편집하고 엮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대학교수를 정년이 되기 전에 사직하고 사전 편찬하는 일에 평생을 매달리며 겐부쇼보 사전편집부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마스모토 선생이 있고, 일생을 사전편집부에서 사전을 만들다 퇴직한 아라키는 계속 출근하면서 사전을 편집한다. 또한 영업부에서 있다가 사전편집부로 오게된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 마지메가 있고, 계약직 사원 사사키, 사전편집부에 있었지만 마지메가 온 후 다른 부서로 이동된 니시오카, 십여년이 지난후 사전편집부에 발령받아온 기시베가 있다.
이들이 십오 년 동안 만드는 사전은 '큰 바다를 건너다'의 뜻을 가진 《대도해》라는 사전이다. 사전 만드는 일에 정신을 빼앗겨 지하철 시간은 넘기기 있쑤고, 사무실에서 잠까지 자며 그들은 사전을 생각하고, 사전을 만든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모르는 낱말을 찾아보고, 그에 관한 설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들의 노력과 열정으로 지금의 우리가 사전을 보는 것이다. 사전이 이토록 힘든 작업인줄 몰랐다. 전에 나와 있는 사전에 조금만 살을 붙여 만드는 것인줄 알았는데 이들이 평생을 바쳐 사전을 만드는 것을 보고 많은 감동을 했다. 《대도해》라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잘 팔리는 다른 사전을 만들고, 그 돈으로 자신들이 진정으로 만들고자 한 《대도해》라는 큰 바다를 건넜다. 아주 오랜시간동안.
무언가를 찾아본다는 것, 찾을 사전이 있다는 것. 우리가 궁금해 하는 뜻을 알수 있는 사전이라는 이야기에 며칠동안 푹 빠져 있었다. 앞으로 종이 사전이든, 전자 사전이든 사전에서 무언가를 찾을때마다 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다. 그들의 땀이 들어있을 노고에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다시금 'Cherish'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인터넷 검색페이지와 휴대폰에서도 검색해보고, 오랜만에 Kool And The Gang의 'Cherish'란 곡을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