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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인생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은 때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춘의 시절인 20대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때가 20대 일수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 가장 아쉽고 그리워하는 시절이 20대 시절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20대를 좀더 잘 보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싫은 건 아니다. 별탈 없이 살아오고 있는 게 좋다. 아이들 키우느라, 직장생활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30대 시절은 그러고 보면 너무 짧았다. 생각해보면 짧았던 시기는 30대 뿐만 아니고 20대도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나의 서른아홉. 이제 곧 마흔이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우울했었던 때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시간을 잊고 싶었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 사십이 넘고 보니 우울해 했던 서른아홉도 그리운 시절이 아닌가.
서른아홉 살의 남녀가 여름이 끝나는 무렵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 여자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차를 태워준 사람의 머리칼을 깎아주는 사람, 키미코. 한 남자는 초 엘리트인 은행원이었지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 휴양차 어머니 집으로 내려온 사람, 테쓰지다. 앞으로 6주간의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될 미와시로 가는 차를 구하는 키미코는 테쓰지의 차를 얻어타게 된다. 그가 듣고 있었던 피아노곡에 관심을 보이게 된 그녀. 미와라는 카페에 내린 그녀는 키미코를 반갑게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곶의 어머니 집에 있다가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해안가를 거닐던 중 바닷물에 이끌려 바다속으로 점점 이끌려가다가 무언가가 자신을 잡아채는 걸 느끼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와시까지 차를 태워준 여자였다. 자신이 걱정되었던지 여자는 곶의 어머니집으로 자신을 데리고 와 보살펴 주려 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모든 집안의 물건들은 다 헝겊에 씌여져 있고 정원은 잡풀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걸 보게 된 키미코는 테쓰지를 아침까지 돌봐준 후 자신에게 음악을 가르켜 달라고 한다. 대신에 어머니 집안 일을 정리해주고 정원을 정리해주겠다고 한다. 그런 후 둘은 조금씩 마음을 터놓게 된다.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는 그는 잠을 자지 못한다.
자신도 한때 아들을 바닷가 소용돌이에 잃어버리고 남편도 멀리 타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로 테쓰지처럼 마음의 감기를 앓았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어느 누구보다도 이해한 키미코는 그의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져 주게 된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를 위로한다.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을 그의 딱딱한 등을 어루만져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키미코가 굳어 있는 등을 어루만져 주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어버린 그는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그렇게 마음속에 감기를 앓는, 또는 앓았던 그들은 서로에게서 위로를 주고 위안을 받는다. 스스로 아줌마라고 칭했던 키미코의 마음에서 어느새 그를 남자로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귀찮게 하는 아줌마로 생각했던 그도 어느새 키미코에게로 마음이 향한다.
그에게 음악들을 배우는 키미코.
키미코에게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듣고 싶어했던, 많이 들었던 곡들을 그에게서 배운다. 글렌 굴드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는 도무지 무슨 음악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그와 함께 들었던 '라 트라비아타'. 처음엔 무슨 뜻인지 알수 없었지만 음악을, 오페라 까지 들으며 '라 트라비아타'의 여자 주인공 춘희의 마음에 어느새 다가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다. 더불어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가장 마음이 약해져 있을때 곁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온 마음속을 채워주는 것 같다.
서른아홉, 이제 붉은 열매를 얼마 맺지 못할거라며 생각해왔던 키미코에게도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도 붉은 여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40대가 되어도 마음은 붉은 여름이라고 생각할수 있지 않을까. 음악을 매개로 수줍은 사랑을 나누는 이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서로를 위로하는 이들은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들. 이들은 여름이 끝날 무렵에 만났지만 다음 계절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했다.
작가 이부키 유키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굉장히 느낌이 좋은 작가로 다가왔다.
왠지 마음을 막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작가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그런 마음의 충만함을 느꼈다. 한마디로 사랑스러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