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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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속으로 들여다 보거나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그 물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갖고는 했다. 어르신 들이 하는 말씀이 있었다. 물을 그렇게 들여다 보지 말라고. 물속에 있는 귀신이 사람을 유혹해 잡아간다고. 지금이야 우스개 소리지만, 그때는 그 말이 무서웠다. 정말이지 물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물이 우리의 혼을 빼앗는 느낌이 들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말은 곧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요정 '세이렌'을 지칭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싶다. 물이란 우리를 사유하게 만들기도 하고 재앙을 주는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베니스라 불리는 후쿠오카의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모티프로 상상의 도시 '야나쿠라' 를 만들어 물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수로가 도시 전체를 가로 지르는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이 연속적으로 실종된다. 실종된 기간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로 돌아오는 그들.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하지만 사라진 그들의 집이 공통적으로 수로가 면해있다. 교이치로는 그의 제자 다몬을 부른다. 대학시절 다몬을 좋아했던 교이치로의 딸 아이코도 야나쿠라 역에 도착하고, 연쇄 실종사건을 조사하던 신문기자 다카야스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실종되었다 돌아온 이들을 인터뷰한 다카야스는 녹음 테이프를 들려준다. 음반 작업을 하는 특성상 다몬은 소리에 민감하다. 녹음 테이프를 듣던 중 인터뷰 도중에 들리는 미세한 소리를 듣는다. 왠지 그리움을 닮은 듯한 소리. 그 소리는 그리운 과거의 어떤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군요. (71페이지 중에서)

 

사건을 조사하던중 도서관에서 다몬과 아이코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습한 장마철, 비가 끊이지 않는 그곳 야나쿠라는 물을 떼놓고는 생각할수가 없다. 5 센티미터 가량의 물의 흐름이 어떤 일을 벌이고 갔는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 조차 충격에 빠지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오고 만다. 다만 도서관에 있던 개 한 마리만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다. 야나쿠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일이 닥쳐올 것인가.

 

기억을 '도둑맞은' 그들.

도둑맞은 건 그들의 기억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모든 것이 도둑 맞았다. 우리가 보는 그들의 참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의식이 불러온 무의식의 세계는 어린 날의 그리움이다. 두렵기만 했던 것도 어느새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멀리 어두운 곳에서 빛을 발하는 달의 모습을 우리가 제대로 알수 없는 것처럼. 달의 이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지,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 우리 인간의 모습도 그러한 것 같다. 그처럼 순수해 보이는 사람의 이면에 감추고 있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확신을 못한다.

 

처음엔 지지부진한듯 산만하게 느껴졌던 글이 어느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깊이 빠지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수로로 연결된 물이 우리를 덮쳐올 것 같아 두려움에 떨어 읽게 되었다. 한여름에 찾아오는 장마. 햇볕은 구경할 수 없고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들릴 즈음, 창문 열어 놓고 자는게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는 밤, 잠이 들려 할때 내 맨발의 시원함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소리와 함께 스르륵 거리며 뭔가 다가올수도 있으므로.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에 내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므로. 몇 일간의 기억이 사라질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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