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을 그어놓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선을 그어놓고 선 너머의 사람을 부러워 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하며 때로는 무시하고 멸시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한 것을 갖고 싶어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질투로 이어져 미지의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기도 한다. 아마도 금지되어 있는 선일수록 더 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것이다. 

 

이 책은 자신에게 금지된 선을 넘고자 욕망했던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금지된 선, 그 금지선이 자신을 비웃고 있을때 자신이 무언가 강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때도 절대 넘어오지 말라며 빛을 발하는 황금빛 선이 너울거릴때 저 너머의 선으로 넘어갔던 아이. 그 아이의 과거의 이야기이자 현재의 이야기.  

 

영국의 명문사립학교 세인트오즈월드. 아버지가 학교의 수위로 일하고 있어 허름한 사택에서 사는 아이에게 세인트오즈월드는 동경의 대상이자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곳이었다. 다니던 학교 서니뱅크파크 종합학교에서 책을 좋아하는 스나이드는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늘 아버지가 일하는 세인트오즈월드의 금지선을 넘어 누군가의 교복을 훔쳐 입고 그 학교 학생인양 운동장을, 교실을, 지붕위를 기웃거리던 아이였다. 때로는 체육 수업하고 있는 아이들 틈에 섞여 있기도 했던 스나이드는 교실 복도에서 열네살의 리온을 만나 자신의 이름을 '줄리언 핀치백'이라 가르켜주고 말썽꾸러기 리언과 함께 무언가를 훔치기도 하는 등 서니뱅크파크 학교를 가지 않고 세인트오즈월드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스나이드의 단 하나의 친구. 스나이드에게는 스나이드만의 친구였으면 했다.

 

세인트오즈월드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무단침입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은 세인트오즈월드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햇빛을 받아 빛나는 창문들을 처음 보았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리언이라면 이런 느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세인트오즈월드의 본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세인트오즈월드의 품격과 역사와 오만한 독선을 말이다. 리언에게 세인트오즈월드는 그냥 학교였을 뿐이다. (360페이지 중에서)

 

15년뒤, 스나이드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하층민인 자신에게 금지되었던 곳의 신임 교사로 부임해 그들 틈으로 섞여 개인 보다는 학교의 명예와 전통을 더 중요시 했던 곳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서서히, 치명적으로.

 

15년 전부터 세인트오즈월드의 고전어학인 라틴어를 가르키고 있는 로이 스트레이틀리와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 스나이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섯 명의 신임 교사인 컴퓨터 교사 미크, 지리 교사 이지, 외국어 교사 미스 데어, 영어 교사 킨, 체육 교사 라이트 중에 스나이드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주지 않는다. 나름대로 스나이드가 누구일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인물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스나이드가 세인트오즈월드를 증오하고 무너뜨리고자 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었다. 스트레이틀리와는 어떤 인연으로 묶였길래 그를 맨 마지막에 손 봐주고 싶어할까. 작가는 불친절하게도 서서히, 막바지에 왔을 때에야 우리들에게 진실들을 알려준다. 그때 15년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나이드의 정체 또한. 우리들의 마음을 궁금하게 하고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더니 우리를 놀려 주듯이 전혀 다른 진실들을 내놓는 것이다.

 

내게는 영화 '초콜릿'으로 알게 된 작가. 작가는 명문 리즈 사립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경험으로 이 책을 썼다 한다. 교사 시절을 회상하며 썼던 터라 십대 아이들의 성격과 집안등 사실적 묘사가 뛰어나고, 아이들을 가르키는 교사들의 세세한 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방대한 분량인데도 쉼없이 스나이드와 스트레이틀리의 속삭임을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스토리를 좇아가기에 바빴지만 다 읽고 나니 다시 첫 장부터 펼쳐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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