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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전에 노자와 히사시의 「연애시대」를 보았다.
그 책에서 이혼하고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들을 잘 그려내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 두고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리라 생각했다. 달달한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의 감성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만 보고 집어든 이 책은 살인장면이 나오는 스릴러 소설이다. 그의 이름과 또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소설이기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가나코.
수학여행에서 친구들과 이불을 둘러 쓰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던 중에 담임 선생님의 호출을 받은 가나코는 자신의 짐을 꾸려 담임 선생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족 모두에게 사고가 생겼을 장소로 이동을 하게 된다. 수학여행지에서 가족들이 있다는 병원까지 네 시간동안 가나코는 끊임없이 생각의 생각을 거듭한다.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혹시 교통사고가 났을까? 아니면 무슨 일일까? 이제 네 살, 다섯 살된 남동생들은 무사할까?
네 시간에 걸쳐 오며 가나코는 자신만 뺀 엄마, 아빠, 남동생 나오키와 도모키 네 가족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병원에 도착하니 하나 뿐인 고모가 울어서 부은 눈으로 가나코를 맞이 한다. 흰색 천이 덮어진 네 사람의 시체를 들여다 볼 생각을 못하는 가나코는 엄마의 발가락, 아빠의 발가락, 두 남동생의 발가락 들을 어루만지며 과거 속의 일들을 회상한다.
여기서 하는 치료보다 시간이 너를 구해줄 수 있을 거다.
~~~~~ 225 페이지 중에서
8년후.
대학생이 된 가나코는 자신의 가족을 죽였던 살인범 쓰즈키 노리오가 드디어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에게도 자신과 같은 나이인 딸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접근을 한다. 그녀의 이름은 쓰즈키 미호. 살인 피해자의 가족만 힘들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살인자의 가족인 미호 또한 자신과 똑같은 아픔과 고통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8년과 미호의 8년은 흡사 마주한 거울 같다. 길이와 각도만 다를 뿐, 상처의 깊이는 똑같이 느껴졌다.
~~~~~ 309페이지 중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은 자로 재기 힘들 만큼 그렇게 똑같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전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작품에서도 그런 이야길 했다. 대부분 우리는 피해자 가족의 상처와 아픔, 고통만 생각하는데 가해자의 가족 또한 그 아픔과 고통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었다.
미호를 보면서 죽은 자기 가족들을 생각하는 가나코의 마음은 애증의 관계와도 같았다.
떨쳐버리고 싶고, 그 고통의 기억속에서 나오고 싶어 병원에 다니면서 카운셀러의 도움을 받지만 오히려 미호를 만나면서 가나코는 잊고 싶었던 자신의 기억들을 꺼내며 아픔을 직시하고 또 그럼으로써 그 고통속에서 조금씩 빠져 나오게 됐다.
살인자의 딸을 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가나코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탁월했던 작품이었다. 살인자의 딸이므로 다른 죄를 물어 똑같은 살인자가 되기를 꾀이는 가나코의 복잡한 마음속도 스스로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려는 가나코의 허우적거리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연애시대」의 그 달달함과는 이처럼 차별된 소설 읽기는 상당히 새로웠다.
대개 추리소설 작가는 거의 추리물만 쓰는데 반해 나자와 히사시는 달달한 로맨스 소설에서부터 이런 짜릿한 소설까지 전혀 다른 소설을 썼다는 게 정말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