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다.

아마도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었던 탓일까. 어렸을때부터 나는 자주 공상에 빠져 있었다. 가난한 생활을 뒤로 하고 멋진 집에서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삶을 사는 나를 상상했다. 그 상상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수업시간에도 그 상상의 나래를 폈었다. 그 마음속의 그림들을 책으로 옮겨보고자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으나 전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었다. 여러 분야의 책을 다 좋아하긴 했지만 특히 좋아하는 장르가 소설일 정도로 나는 다른 삶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작가를 만난다는 것.
전혀 모르는 작가의 글을 처음 읽었을때 마치 그 작가와 깊이 교감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울리는 글을 만났을때 나는 굉장한 가슴 두근거림을 느낀다. 내 온 감성을 자극하는 글을 만났다. 소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깊이 감동 받는 책이거나 흡입력이 강한 추리소설을 읽을 때 그런 말을 하고는 한다.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그 해결해 나가는 것과 주인공이 어떤 일들을 헤쳐나가는 것을 보면서 깊이 공감하는데 아마도 전개되는 내용때문에 그럴 것이다. 조해진 작가의 문장들은 나를 그 문장들에, 그 페이지에 멈추게 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책속의 글들이 좋아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처음 만나는 작가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이다.
내용이 더디 가는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감성이 자극되어 천천히 읽게 되었다.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온게 몇번 되지만 나는 책 속의 '김 작가' 를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다지 두껍지 않는 책이었지만 천천히 읽게 되었다.

형편이 안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로 만들어 실시간으로 전화 ARS 시스템으로 시청자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그램의 작가인 '나'는 피디 재이와 함께 우연히 연주를 만나게 된다. 한쪽 얼굴이 부어있는 열일곱 살 연주와 다른 출연자와는 다르게 인간적인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수술이 예정되어 있던 날에서 조금 뒤면 추석이라 더 많은 후원금을 받아 연주를 도와줄 요량으로 추석으로 방송시간을 옮기고 수술하던 날 그 신경섬유종이 악성 종양으로 변해버린 상태에서 연주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는 자책감에 사랑했던 재이 피디에게도 이별을 고하고 연주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나'는 시사잡지에서 벨기에서 떠돌던 탈북인 로기완의 고백이 담긴 짧은 문장 때문에 그에 대한 글을 쓰겠다며 그가 머물렀던 벨기에 브뤼쎌로 떠나 온다. 이곳 브뤼쎌에서 '나'는 로기완의 일기 속에 있던 장소들을 더듬으며 로기완의 흔적을 한국에 두고 온 윤주와 재이 피디를 생각한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9 페이지 중에서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  48 페이지 중에서

브뤼쎌에서 '나'는 로기완을 도왔던 '박'을 만나게 된다. 
박의 배려로 박의 비어있는 집에 머물던 '나'는 윤주와 재이 생각에 수면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로의 일기를 보며 그가 머물렀던 곳에 가 그가 했을 행동들을 생각하며 마음아파하며 로의 흔적들을 더듬는다. 그리고 박이 무엇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지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상처와 그로 인한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고통을 해결하는 법도 저마다 다를 것이고 로에 대한 글을 쓰겠다는 '나'도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를 빌어, 쓰고 싶고 나누고 싶어 했다. 그 글을 쓰므로 인해 그 글속에서 자신을 들여다 보며 치유를 받을 것이다. 장례식장 같은 곳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우리가 우는 이유는 꼭 그 주인공들을 보며 울지는 않는다. 그 주인공들의 슬픔에서 자신의 슬픔을 보며 우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삶을 보며 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고통속에서 빠져나오는 일. 그 들의 삶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괜찮은 거라며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일이 그래서 나는 좋은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수 있기에 책 읽는 일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 작가처럼. 로의 힘든 여정을 연민의 감정으로 글로 옮기며 자신이 도망치고자 했던 곳으로 다시 갈 수 있는 일. 그들을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일.  

나를 먹먹하게 했던 책이었다. 
좋은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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