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즐거운 책이 있고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는 책이 있다.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 어디 하나 숨 쉴수 없이 꽉 막힌 그들의 삶을 마주했을때 느끼는 감정들이다. 책에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리 체험하면서 가슴아파하는 경우. 이 책이 딱 그랬다. 도대체 삶에서 삶이 즐겁다고 느낀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뼈 빠지게 일해도 통장의 잔고는 늘어갈 줄 모르고 설상가상 그녀의 남편에게 닥친 사고와 또 친정 가족들의 일까지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녀 앞에 시련이 쌓여간다. 이제는 좀 괜찮겠지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그녀에게 닥친 일을 보고는 너무도 화가 났다. 이럴수는 없는 거지, 이럴수는 없는 거잖아. 그녀에게 한 줄기 희망이라도 있었으면. 계속 이렇게 살아간다면 너무도 절망해버릴것 같은데 그녀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는 그녀를 보며 난 마음이 아프다. 내가 어쩌지 못하므로. 내 주위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수 있으므로. 윤영의 이야기는 먼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윤영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그걸 알기 때문에 혼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윤영, 아이를 낳은지 몇개월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생활하고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러 나간다. 아직 젖먹이인 아이 때문에 일하다보면 젖이 불어있지만 자기가 벌지 않으면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없다. 오직 남편이 공무원 시험 합격하기만을 바란다. 공무원 시험 합격이야말로 자신의 궁핍한 삶에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왕백숙 집에서 일당 4만원을 벌다가 욕심을 내어 몸을 파는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아침에 일찍 나가 밤까지 12시간 넘게 일하다 오면 너무도 힘들어 씻지도 못하고 잠들때가 많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아이를 데리고 공부한다던 남편은 얼굴빛이 좋아진다. 너무도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뒤엎기도 하고 무언가를 발로 차는 걸로 분풀이를 하려 한다. 일을 끝내고 별채에서 나오면, 나는 꼭 물가에 들러 한동안 서 있곤 했다. 물은 느리고, 또한 무심하게 흘렀다. 시간도 그렇게 흐르기 마련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쪼그려 앉아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면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나는 다시 왕백숙집 여자가 될 수 있었다.(59페이지 중에서) 책을 읽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윤영의 인생이, 앞이 꽉 막힌 그녀의 삶, 너무도 힘든 가장으로서의 그녀의 삶이 너무도 답답했다. 차라리 모든 걸 버리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아이와 남편을 버리고 떠난 여자들에게 어떻게든 살아가지 어쩌면 그럴수 있느냐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그 사람의 사정을 몰라서였던거다. 나는 아마도 내 현실만 보았을것이다. 만약 윤영이 아이와 무능한 남편 그리고 친정 가족들을 버리고 떠났다면 이해했을것 같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사니 떠났을거라고 말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내이자 엄마인 윤영은 그저 아무말 없이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김이설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데 어쩌면 이러한 고단한 현실앞에서도 아무말 없이 살아가는 윤영의 모습을 담담하게, 아주 냉정한 필체로 그녀의 모습을 그렸다. 어두운 내용보다는 밝은 내용을 선호하는데도 작가의 글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벼랑에 내몰린 위태위태한 윤영의 모습에 한 조각 다정함조차 내비치지 않는 작가의 글이 다른 작품도 다 찾아보고 싶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