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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말해줘
버네사 디펜보 지음, 이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한창 감정이 예민할때 또한 사랑을 꿈꾸었을때 각종 꽃에 대한 꽃말을 알아내는 일에 몰두했었다. 내가 빨간 장미를 주었을때 혹은 받았을때 빨간 장미는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 노란 장미는 '질투'나 '부정'을 나타낸다는 것.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갈때 들고 다녔던 노란 프리지어는 '오래가는 우정'이라는 것. 또 봄이면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 늘 놓아두고 싶어하는 노란 수선화는 '열정'을 나타내는 것 또한. 그 꽃이 말하는 말을 알아내려고 이 책 저 책 뒤지는 일들을 많이 했다. 그 예전 빅토리아 시대의 연인들이 나누었던 비밀 편지, 꽃으로 모든 의미를 파악하려 했던 이들처럼. 지금도 꽃말을 알아내는 일은 즐겁다. 그 꽃이 의미하는 말을 기억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잊고 몇 개만 겨우 기억하고 있다는 것.
수백 년전 빅토리아 시대의 그 연인들처럼, 꽃으로 세상에 말을 건네는 소녀가 있다.
태어날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 소녀. 여러차례 입양 가정에서 거절당하고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거칠고 세상 사람들에 대해 증오를 품고 있던 염세주의적인 소녀 빅토리아. 빅토리아가 아홉살이던 해, 역시 엄마와 언니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다시피한 아픔을 간직한 엘리자베스에게 입양된 후,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는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에게 꽃이 의미하는 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세상에 대해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던 빅토리아에게 꽃은 그나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존재였던 것. 열여덟 살이 되어 보육원에서 나갈 수 있었던 빅토리아는 이제 혼자라는 것,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공원 한 귀퉁이에 야생 제라늄과 나팔꽃, 시계꽃 등을 심고 히스 수풀속에서 잠들다가 배고픔과 깊은 잠을 잘수 있는 곳을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블룸'이라는 이름을 가진 꽃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을 하는 빅토리아는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꽃을 다루는 일이 너무도 즐겁다. 꽃집에 머리가 허옇게 센 손님이 찾아와 심술궂게 변해버린 열여섯 살의 손녀딸에게 선물할 꽃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빅토리아는 흰장미와 은방울꽃으로 된 꽃다발을 만들어주면서 은방울꽃은 행복을 되찾게 해준다는 말을 건넨다. 그후 손녀딸이 정말 행복해 했다는 말을 듣고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그녀는 꽃이 필요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꼭 필요한 선물을 하게 되면서 점차 그녀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지고 그녀는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꽃에 대한 일을 하는게 즐겁다. 그리고 닫혀 있는 자신의 마음을 여는 존재들이 있다. 꽃 그리고 꽃으로 건네진 사랑.
아홉 살의 어린 소녀 빅토리아가 엘리자베스에게 입양되어 날을 세우고 있다가 점차 엘리자베스에게 마음을 열어가던 때와 열여덟 살의 빅토리아가 꽃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이야기가 교차되어 전개된다. 버네사 디펜보라는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고, 열여덟 살의 입양한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점, 18세가 되어 위탁 자격을 상실한 아이들을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작가의 이력이 왠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빅토리아가 꽃으로 인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이 진정 사랑한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이었다. 첫 부분에서는 빅토리아에 대한 안타까움이, 중간 이후부터는 자신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아주 쉽게 끝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 사랑을 거부하고 망설이는 일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아마와 물망초, 개암나무 꽃, 흰 장미와 분홍 장미, 헬레니움, 페리윙클, 앵초,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종꽃, 단단하게 묶은 꽃가지 사이사이에 벨벳 같은 이끼를 채워 넣고 멕시칸 세이지를 따서 흰색과 자주색 꽃잎을 위에 뿌린 꽃다발을 안고 엘리자베스에게 발걸음하는 빅토리아를 보고는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를 한참이나 울게 만든 소설, 꽃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꽃을 건네고픈 소설.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소설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