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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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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뜨겁게 달군 『혼모노』의 작가, 예스24, 2024년 젊은 작가상 1위에 선정된 작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열아홉 살의 기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한 살의 재하와 가족이 되었다. 새어머니는 기하와 친해지려고 다가서지만 기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재하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노력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면 모르겠지만,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 새로운 가족은 필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열아홉 살의 기하에게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성인이 된 기하가 4년 동안 가족으로 지냈던 재하와 재하 어머니에 대하여 좀 더 다가서지 못했던 후회의 감정을 말한다. 그와 동시에 재하는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던 기하 형과 다정한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새아버지를 기억한다. 조곤조곤 말하듯, 편지 형식으로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서술한다.

기하는 재하 어머니에게 ‘저기’ 혹은 ‘그쪽’이라고 불렀다. 반면 재하는 아버지와 금세 친해져서 우리 막내,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다. 기하는 곁을 내주지 않았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다시 만나면, ‘잘 지냈니?’라는 말을 할 것 같았다. 늘 혼자 찍던 사진을 재하가 온 뒤 가족사진을 찍어 기하의 사진이 놓인 자리에 가족사진을 두었다. 왜 재하와 재하 어머니께 다정하지 못했을까. 과거의 시간을 지나, 마치 지난 안부를 묻는 듯하다.
농밀하게 자란 오리나무 사이에서 한 무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푸른 기운을 띄던 숲이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38페이지)
아무래도 소설의 제목을 암시하는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다. 아버지가 자주 출사를 나가곤 하던 인릉을 방문할 때면 홍살문을 빠져나올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무언가를 남겨둔 거 같은 마음. 누군가가 붙잡는 거 같은 느낌. 아버지에 관한 서운함이 재하 모자를 멀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다정함을 처음 느껴보는 재하에게 기하는 어렵기만 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하와 재하는 모두 친형제였으면 어땠을까, 하고 반추한다. 친형제였다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열한 살의 재하가 느꼈을 감정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새아버지에게, 형에게 다가가려 했던 그 모든 노력에 마음이 아팠다.
가족인 척하며 산다는 것. 가족이라는 이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진짜 가족은 느끼지 못할 감정일 것이다. 비록 4년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피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쌓아두고 있지 않았을까. 먼 훗날 떠올려보며 그때 조금만 마음을 열었다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반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재하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음 한편으로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는 상상 말이다. 재하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시 재혼하지 않더라도 형제만큼은 친형제처럼 고민을 얘기하고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로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상당히 냉정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뀐 전화번호를 주지 않고, 그런 줄 알면서도 보내지 않을 편지를 쓴다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긍정적인 결말이 아닐까. 먼 훗날 우연히 마주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해나의 문장이 좋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고, 풀어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매력적이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감동은 배가 된다. 어긋났던 관계를 뒤돌아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마음을 열고 대하지 않을까. 관계의 변화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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