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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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온전한 기억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 적당히 잊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다고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어떻게 기억을 잃을 수 있느냐며 한탄할까.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는 게 좋다. 가슴에 부여안고 있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아프고 또 아프면 통째로 잊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알츠하이머 치매가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걸 잊는,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주변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토록 총명하던 분이 기억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은 슬프기 짝이 없다. 과거를 잊어도 나는 나다. 알츠하이머 치매인데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스틸 앨리스>가 생각났다. 우리 또한 미래에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게 맞겠다.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인 친밀한 이방인의 작가 정한아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3월에 태어났다고 마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주인공이다. 국민엄마 배우로 연기와 인기, 재력을 거머쥔 이마치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55킬로그램 몸무게가 변하지 않던 마치는 육십 살 생일에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59킬로그램의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주 깜빡거리고 지갑 없이 택시를 타는 등 경증 치매 증세가 있는 알츠하이머 전 단계 상태다. 거금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VR 치료를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치료로 기억 속 건물에서 과거의 이마치와 만나며 잊었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린다.



 

이마치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했다가 다시 입주하기 시작했을 때 이마치는 누구보다 먼저 예전의 집 형태 그대로 입주했다. 사라진 아들이 찾아올까 봐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방을 그대로 두고 그 방만은 깨끗하게 정돈을 했다. 과거 마치에게는 남편과 딸, 아들, 매니저 K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누구도 없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의 마치에게는 노아라는 젊은 청년이 기억을 돕는다. 43층의 이마치와 딸 준영, 40층의 마치, 더 어린 딸 준영을 만나며 과거의 기억 속을 들여다본다. 마치와 노아가 방문하는 집은 모두 마치의 기억 속 공간이다. 언니 준이 살아있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간 마치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엄마에게 맞는 십 대의 마치에게는 조금만 참으라고 말한다. 마음속으로는 엄마의 집을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되뇐다. 다른 소설과 달리 과거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며 바꿔서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듯했다. 마치의 치료법은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과거를 기억해내는 게 필요해서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해줄 말이 뭐가 있을까. 살아온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할 수 있는 건가. 과거의 장소에서 과거의 나와 조우한다는 건 내가 놓쳤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거다. 그녀가 놓쳤던 것 하나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편과의 불화, 아이들을 뿌리쳤던 지난날들의 후회가 마치를 괴롭힌다. 과거의 기억을 마주했을 때 후회뿐이었다는 것마저 내 기억을 돕는 장치라는 게 슬펐다.

 



아들을 잃은 엄마를 옆에서 바라봐야 했던 딸 준영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성년이 된 딸은 엄마를 거부하고 떠났다. 남편은 전국으로 아들 정민을 찾아다녔지만, 마치는 아들을 잃은 고통을 잊고자 더욱 연기에 집착했다. 그 결과가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로 나타났다. 아마 과거를 잊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마주한 마치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딘가에 아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 비오는 날 택시비를 받지 않았던 운전기사와의 조우, 마치의 기억을 찾는 과정을 함께 한 노아의 정체를 아는 순간 고통스러운 슬픔이 몰려왔다. 잊고 살았던 과거, 잊지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들려왔던 소음,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던 청년과의 만남 등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인 것 같다. 도무지 실재했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난다. 남은 사람에게 죽은 자가 건네는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조밀하던 이목구비가 흐물거리고 늘어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이윽고 우유를 다 마신 아이는 빈 잔을 노아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들이 모여 서 있는 곳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213페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주변에서 맴도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라. 간절한 바람을 안고 주변을 맴돌 그 사람을 위해 마음을 열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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