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천국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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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 실재하지 않지만, 나의 모든 기억이 실재하는 곳. 롤라라는 세계에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산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모든 기억이 데이터화된 세계에서 각자의 기억으로 움직이고 또 다른 삶을 산다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소설의 배경은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데이터이며 통합 플랫폼인 롤라와 유빙으로 둘러싸인 노숙자들의 쉼터 삼애원이다. 롤라에서 드림시어터를 설계하는 디자이너 해상이 경주의 의뢰로 그의 집을 찾아가며 시작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드림시어터를 설계해달라고 한다. 평소 같으면 맡지 않았을 일이었다. 거절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병원에서 유명한 도수치료사였던 경주는 좋지 않은 일이 연속이었다.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승주에게 화를 냈다가 동생이 주검으로 돌아오자 충격받는다. 때마침 구인 광고가 나와 삼애원의 보안요원으로 들어간다. 동기인 제이와 팀장, 커피를 만드는 베토벤과 옥희 씨, 베토벤의 앵무새 공달이 삼애원의 멤버다. 롤라의 해상이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제이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게임 프로그래머였다. 이 모든 인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엄마와 같은 병을 앓게 되는 해상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루게릭병으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차라리 거추장스러운 몸을 버리고 롤라의 세계에서 머무는 것도 다른 한 방법이겠다. 롤라의 세계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고, 전공 혹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살려 직업으로 삼아도 되지 않겠나. 롤라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롤라의 세계에서도 죽으면 그가 설계했던 삶이 끝나는 것은 자명하다. 롤라의 세계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홀로그램이지만 느끼는 건 실제와 같다. 비록 홀로그램으로 구현될 뿐이지만 말이다.


 

소설의 배경으로 사용한 삼애원은 홋카이도의 유빙으로 가득 찬 풍경과 해상이 사막여우를 찾아 떠났던 바하리야 사막은 작가가 직접 다녀와 작품 속에 녹여냈다. 유빙에 부딪혀 죽은 사람들이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작가의 여행 영상을 보니 차가운 아름다움과 슬픈 풍경이 공존했다.

 


인간은 모두 욕망의 동물인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장면은 어쩌면 처연한 장면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행동할지도 모른다.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피하려고 애쓰며 살아온 기억과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마주 볼 수 있다면 불친절하고 변덕스러운 운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받아들이면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 같아서. (435페이지)

 


그동안 읽어 왔던 정유정 작가의 다른 소설처럼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었다. 작가가 구축한 롤라라는 가상 세계와 인물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사랑 이야기이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거대한 메시지에 가깝다. 우리의 몸은 필요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이 중요한 세계다. 나의 상상대로, 나의 기억대로 만든 세계에서 우리는 행복할까. 영원한 천국으로 인식할까. 우리가 만든 상상 속의 세계에서도 누군가에게 위협받고 두려워할 수도 있을 거라는 게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꾸는 영원한 천국이란 우리 마음속에 달려 있다고 본다. 영원을 꿈꾸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무엇.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슴푸레하게 상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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