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어머니의 유산 - 미즈무라 미나에

어머니의 유산 - 미즈무라 미나에ｌ책읽기

Breeze l 2023-06-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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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돌봄 노동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왜 있는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면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간병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간병인을 구하고 대학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일도 마찬가지다. 금전적인 것도 큰 문제다.

‘엄마, 대체 언제 죽어줄 거야?’라는 마음을 품고 사는 딸이 있다면 인륜을 저버렸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던 어머니가 저버린 병든 아버지를 오랫동안 보살피고 간병했다. 팔순의 어머니를 간병하던 딸은 어머니가 이제 그만 죽어주기를 바란다.

소설은 죽은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시작된다. 화려한 삶을 추구했던 어머니는 분수에 맞지 않은 실버타운에 입주했다. 입주금에서 남은 돈과 어머니의 재산이 언니 나쓰코와 미쓰키에게 상속되었다. 대학교수 남편에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것 같았지만 미쓰키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후 내 돈이 생기고, 오십대에 남편에게 해방될 생각을 하니 기뻤다. 우연히 남편이 쓰는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했다가 젊은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 데쓰오의 젊은 여자는 이혼 후 미쓰키에게 줄 위자료까지 상세하게 적어놓고 있었다.

미쓰키는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언니도 미쓰키도 파리 유학을 다녀왔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미쓰키는 돌봄과 나이 듦의 관계에서 힘겹게 지탱해오고 있었다. 이혼 후의 삶을 계획하며 게이샤 출신이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이 자신에게까지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의 굴레에 갇힌 듯도 했다.

늙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딸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어머니를 가져도 수많은 딸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순간쯤은 찾아오는 게 아닐까. 그것도 어머니가 늙으면 늙을수록 그런 순간은 빈번히 찾아오는 게 아닐까.

(중략)

젊을 때는 추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늙음’이 두뇌와 전신을 덮칠 뿐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모두를 덮치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인 인생인 것인가. (491페이지)

여자의 삶과 나이 듦에 관한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젊었을 때는 젊음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지난 후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지나간 젊음이 찬란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엔 어머니의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지지부진하게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상황에서 스스로 헤쳐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담 보바리』는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미쓰키가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해서 늘 읽고 있고, 프랑스판을 사전을 끼고 읽으며 전에 놓쳤던 번역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걸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고 포기한 기억은 응어리처럼 남는다. (533페이지)

각자의 추억이 있는 호텔에서 여러 사람이 만난다. 젊음이 스러지듯 쇠락해가는 고풍스러운 호텔로 여행 온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찾아온 이들이다. 혼자 죽기에 좋은 장소인 것만 같다.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는 듯하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서로를 주시한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자유로움이야말로 여자들이 꿈꾸는 삶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늙은 부모와 늘 애인이 있었던 남편에게 벗어남과 동시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삶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미쓰키가 늘 꿈꾸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