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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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신성한 일이다. 때로는 가혹한 결과를 안고 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토킹 같은 거다.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말한다. 무심한 눈길이었음에도 암시를 주고 있다고 여기는 것. 착각에서 비롯된 거지만 잘못된 결과로 이어진다. 사랑을 말하는 사람도 힘겨운 일이겠지만, 물론 망상이라고 해도 말이다. 스토킹을 당하는 당사자는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 클래리사와 함께 소풍을 즐기던 순간, 와인 오프너로 병의 마개를 따는 순간, 들리는 고함에 달려 나갔던 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일상을 만든다. 헬륨 기구에 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남자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바구니 안에 있는 소년을 구하기 위해 밧줄을 잡았다. 순간 돌풍이 불었고 허둥대던 그들 사이에서 누군가 한 명이 밧줄을 놓았다. 한 명이 밧줄을 놓자 돌풍에 떠밀려가지 않기 위해 조와 다른 사람도 놓았다. 유일하게 밧줄을 놓지 않았던 존 로건이 헬륨 기구와 함께 높이 떠올라 날아갔다. 버티지 못했던 로건이 추락했다.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던 조는 로건이 죽은 장소로 갔다가 함께 밧줄을 잡았던 제드 패리와 눈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조가 패리에게 뭔가의 암시를 줄 수도 있을까. 패리는 조가 자기를 선택했다고 하며 마음을 열라고 말한다. 전화를 걸고 강연회에 찾아오고, 그가 쓴 글을 읽고 집에 찾아와 문 앞을 지킨다. 클래리사와 경찰에게 패리의 스토킹을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조의 망상이라고 여긴다. 나 또한 헬륨 기구에서 추락한 존 로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상상력의 산물, 즉 망상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과학 칼럼니스트인 조는 패리의 망상을 드클레랑보 증후군으로 결론 짓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는 증상이며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조증 환자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책의 부록에 있는 드클레랑보 증후군의 P의 사례는 실제처럼 여겨진다. 패리의 존재가 조의 망상인지, 조를 향한 사랑으로 폭력과 죽음에 이르기를 바라는 패리의 망상인지 시종일관 긴장하며 읽었던 것 같다. 조와 클래리사의 사랑은 견고했으나 패리의 존재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에 집착하는 조가 클래리사에게는 망상에 빠진 듯 보였다.

 


과학 칼럼니스트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성적인 시선과 존 키츠를 연구하는 문학적인 시선이 다정하게 얽혀 있었다. 비록 조가 자기(패리)를 사랑한다는 믿음으로 신과 과학이 부딪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랑이 불러오는 파국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사랑이 아무 문제 없을 때는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사랑이 의심받기 시작할 때부터 사랑은 변질되고 만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변하여 어떤 거로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굳건한 사랑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조가 클래리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사랑을 지켜야 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종교와 비뚤어진 사랑에 집착하는 것 같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 자란 결핍이 나이 든 남자에게서 아버지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사랑의 관계란 얼마나 얇은 것인가. 마치 종이 한 장처럼 가볍기만 하다. 어떤 계기가 되어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재와 결핍이 만들어낸 망상, 그 안에 갇힌 사람의 몸부림이 안타깝기만 했던 건 나만의 감정일까.


 

1997년에 발표된 견딜 수 없는 사랑은 수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서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부커상 수상이 기대되었으나, 작은 것들의 신이 수상했고 그다음 해 발표한 암스테르담이 부커상 수상작이 되었다. 암스테르담에 비해 조명이 덜 되었으나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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