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면 반칙이다 - 나보다 더 외로운 나에게
류근 지음 / 해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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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새로운 알림 글이 오면 아주 가끔씩 들여다보는데, 정치하는 친구를 가장 먼저, 그다음에 류근 시인의 페이지에서 한두 꼭지씩 글을 읽는다.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정도다. 신간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구매해 읽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을 할까.


 

전에 읽었던 산문과는 달랐다. 류근 시인 글 같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까. 유연해진 글들, 어린 시절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일화가 많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들.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 때, 어머니가 건넨 한마디에 위로받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주무시라고 촛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불이 났던 때에도 아들의 안부를 먼저 묻던 어머니를 기억하는 시인에게서 그리움을 엿본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공감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신간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 것일 수도 있다.


 

배낭의 무게가 줄어들고 걸음의 속도가 늦춰지면서 비로소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줄어들고 늦춰지는 만큼 여행은 나를 받아들였다.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믿으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과잉한 것들에 의지하면서 살아왔는지 깨닫는 여정이었다. 나는 점점 더 남에게 주거나 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행색이 거지꼴에 가까워질수록 내 표정은 맑아졌다. 가난이 주는 평화와 기쁨. (84페이지)

 


25년 전 인도, 배낭 속에 소주 한 박스, 라면 한 박스를 채우고 이등병의 속도로 걸었던 처음과 달리 짐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비로소 여행다운 여행이 시작되었던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좀처럼 짐을 내려놓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바로 앞에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앞을 향해 달린다. 짐의 무게에 짓눌려 현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바쁜 연말, 출퇴근 시간에 꺼내어 조금씩 읽었던 책인데 금세 읽었다. 20181월부터 4년 여 동안 페이스북에서 사랑받았던 글 중 130여 편을 엄선하여 28컷의 일러스트와 함께 펴낸 산문집이다. 산문집에서 우리는 들비와 함께 산책하거나 아픈 들비를 돌보는 시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다. 따뜻함이 배어있는 깊이 있는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저자의 아버지가 생각나는 비 내리는 날의 풍경은 어쩐지 애잔하다. 나이가 들어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깨닫는 일. 비를 바라보며 들비와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라면을 끓이는 저자를 그려본다.


 

혼자서 술을 마시면 푸른 술잔에도 있고, 내 손등 위에도 있고, 창밖의 고단한 빗방울에도 있고, 늙은 가수의 목소리에도 있고, 발등에 툭 떨어진 눈물에도 있고, 천천히 오는 가을과 겨울에도 있네. 이름만 봐도 울고 싶어지는, 이름만 봐도 서둘러 정거장에 나아가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이름이 있다. 당신의 오래고 먼 이름이 있다. (139페이지)

 


외로움과 슬픔이 짙게 배어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날것의 감정이 살아 있어 감정들에 침잠하게 된다. 위로와 공감의 언어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시인의 깊은 사유는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준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그처럼 진지하기 그지없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다시, 류근의 문장들을 음미한다. 비속어가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가벼운 농담 같다. 우리의 오늘을 시적인 문장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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