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으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만난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그동안 소설 몇 작품과 산문집을 읽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좋아진다. 글의 편안함과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세계를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글에 반하게 된다.

 


글을 쓰는 작가의 고뇌라기보다 이웃집 할머니의 꾸밈없는 감정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한동안 어떤 분 때문에 보통사람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작가도 글에서 보통사람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기준이 얼마나 천차만별인지 깨닫는다. 작가의 딸들이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딸의 배우자로서 바랐던 건 그저 보통사람이면 되었다. 자기 기준에서 욕심을 안 부렸다고 생각했으나 깊게 들어가 보면 그것처럼 까다로운 조건도 없다. 어느 기준을 세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작가가 우리말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넉넉하다. ‘넉넉하다라는 말은 물건들보다는 마음을 표현할 때 더 맞는 말 같다. 넉넉한 마음이 없는 최근의 세태 때문일까. 어쩐지 사라져가는 말인 것만 같아 안타깝다.


 

 

 

작가가 문학상 심사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출판사에서 보낸 수상 후보작들이 제대로 배달되지 않았다. 택배를 보낸 용역회사에 높은 목소리로 따졌으나 책을 가지고 온건 어린 소년이었다. 원망의 목소리로 말한 소년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화를 말했다. 어쩌면 말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그것들을 말하는 작가에게서 투명한 감정을 만나는 거 같았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 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252페이지)


 

 

 

죽는 것은 몸일 뿐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다 만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먼저 간 사람과 같은 곳으로 간다는 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그곳이 허든 무든 신의 섭리든 간에, 그곳으로 비상을 하든지, 추락을 하든지, 빨려들든지 할 것이다. (274~275페이지)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건 당연하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의 슬픔이 느껴진 글이 있어 저절로 울컥해졌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 같은 거. 그게 만약 죽음이라면 더할 거 같다.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들이 죽었을 때 곧 만날 거라는 마음 때문에 견뎠다는 글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았다. 슬픔에 겨웠으나 몇 개월이 지나자 배가 고프더라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다른 사람 글에서도 본 기억이 있다. 슬픔과 배고픔의 허기가 전해지는 듯했다.


 


 

 

자꾸 나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면 현재는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과거의 기억은 선명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자연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과거의 기억에 기초해 현재를 살아가지만, 자꾸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걸 즐기는 거 같다. 잊지 않으려 애를 쓰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효능의 꿈을 꾸겠다. (206페이지)


 


 

 

아직 어린 딸이었던 작가의 교육을 위해 시댁 어른들을 설득하여 서울로 데리고 가 신여성이 되길 바랐던 어머니 때문에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어머니 덕에 그 재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와 닿는다.

 


박완서 작가 타계 11주기에 맞춰 다양한 책들이 재출간되는 거 같다. 작가를 기리고 작가의 글을 다시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작가의 글은 영원히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작가의 책들을 읽다 보니 아직도 살아계시는 것만 같다. 그 감동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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