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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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아이, 아버지마저 죽자 신에게 반항하기 위해 뒤로 걷는 자가 있다. 죽음이 주는 슬픔과 상실감, 신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은 사랑이며, 사랑은 곧 집이다. 퇴근 후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집을 잃은 것과 같다.


 

집을 잃은 세 남자가 있다. 1904년의 포르투갈 리스본의 고미술 박물관 학예사 토마스, 1938년의 부검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1981년의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가 그들이다. 세 남자는 아내를 잃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각자의 방법으로 견디는 중이다. 토마스는 율리시스의 일기장에서 읽은 십자고상의 본질을 확인하고자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에우제비우는 새해로 넘어가려는 순간 아내 마리아가 찾아와 함께 읽었던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 속에 숨은 복음에 관한 대화를 한다. 같은 이름의 다른 마리아가 찾아와 남편을 부검해 달라고 한다. 남편이 왜 죽었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필립은 아내를 잃고, 아들마저 이혼하자 큰 슬픔을 느낀다. 우연히 방문한 유인원 연구소에서 침팬지를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교감을 한다. 거금을 치른 후 침팬지와 함께 살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슬픔을 견디는 각자의 이야기면서 하나의 이야기다.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은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커다란 슬픔을 짊어지고 그 무게에 짓눌려 전혀 다른 선택을 한다. 죽음을 거부하고 싶어 뒤로 걷는 자와 사랑하는 남편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은 부인, 남편의 몸이 자신의 집임을 깨닫는 과정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다른 사람은 유인원에 의지해 안식을 얻게 된다. 토마스가 간절히 찾았던 십자고상에서 율리시스 신부가 느꼈던 신에 대한 사랑과 감동은 다시 신의 사랑을 느끼는 것과 같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253페이지)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토마스가 찾고자 했던 십자고상의 본질을 알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다른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신의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기도 하다. 거부했던 신의 존재와 사랑,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마주하게 되는 감정은 우리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그 본질을 깨닫는 과정과 같다. 구원의 길도 다르지 않다. 낮은 자들 중에서 가장 낮은 자들,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신은 가장 낮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며 그 속한 것이 구원의 길이며 안식이었다.

 


믿음과 신의 존재,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의 차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길에 서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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