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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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이름을 제대로 인식한 게 최근이라는 거다그렇지만 그의 시를 오래도록 알아왔던 것 같다노래에서혹은 어디에선가 들었던 시였다예를 들자면가수 이동원이 노래한  ‘이별노래와 김광석이 부른  ‘부치지 못한 편지가 그의 시다또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같은 것반어적인 표현이면서도 굉장한 감동을 일으키는 시였다.


 

그 시의 제목이  그리운 부석사.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137페이지그리운 부석사 전문)


 


 

 

부석사는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만 각인되어 있는데무량수전을 올라가는 길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가 이 시에 표현되어 있음을 알겠다사과나무가 어우러진 길높은 계단은 마음을 정화 시키듯 길을 오르게 된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라니. 그저 아득하다. 그 감정이 너무 격해서, 시의 구절이 계속 부유한다.

 


정호승 시인의 50년의 시가 수록되어 그동안 부분적으로 읽어왔던 시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1973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많은 일을 보고 겪었다. 총과 칼이 난무하던 어두운 시기를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때는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 시에 현실을 담는다는 건 불가능했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처절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저 서정적인 시로 읽었으나 아픔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음을 시선집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느낀 감정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서 맹인 부부 가수를 읽을 때는 슬픔의 감정 만을 짐작했었다. 다시 읽고 보니, 막막한 세상의 힘겨움을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삶을 맹인 부부 가수로 나타낸 것 같다.  모르는 것과 이해할 수 있는 것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국립맹학교에서도 나타난다. 달을 못 본 지 5년이나 되었다고 말하는 소년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277페이지,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부문)

 


역시 시는 한 번도 읽어서는 그 뜻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어느 순간 시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맑고 밝은 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415페이지,  새벽별  전문)


 

시는 자꾸 읽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 언젠가 어떤 소설가가 소설보다는 시집에 파묻혀 산다고 했던 걸 본 적이 있다. 왜 시집일까 했는데,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 시가 더 좋은 것이다. 자꾸자꾸 읽으면 시가 더 좋아지는 것이리라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다.
시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만인을 위한 것이다. 라고 시인은 말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마음속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면 그 시가 좋은 시다. 더불어 나의 시, 우리 모두의 시가 된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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