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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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을 처음 읽은 후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에 반했다단편도 좋지만장편이 더 좋은 나는 작가들의 장편을 기다린다그것도 자주목마른 사람처럼 자꾸자꾸 기다린다최은영의 소설이 그랬다첫 장편 소설이라는 점도 좋았다.


 

여성 서사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나부터 우리 엄마엄마의 엄마인 할머니할머니의 엄마까지대부분 엄마의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설은 많은데 할머니의 엄마까지는 그 대상에 든 적이 드물다할머니가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순간할머니도 한때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였고 할머니에게도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지연은 이혼 후열 살 무렵 할머니의 집에 갔었던 기억을 가지고 희령으로 향한다마침 희령에 소재한 천문대 연구원을 구하고 있었다자기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잘못한 건 남편이었는데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고 남편을 두둔하는 아빠와 엄마를 피해 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경우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14페이지)

 


퇴근 후 동네를 산책하다가 한 할머니를 만났다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미소 짓던 분이었다자신의 손녀딸과 닮았다며 딸의 딸 이름이 이지연이라는 것과 딸 이름은 길미선이라고 했다자신과 엄마의 이름이었다열 살 때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지연이 무슨 이유로  20년이 넘도록 왕래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장면이었다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였다면 딸과 왕래를 하지 않았다는 건데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의문이 들게 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약속을 정하여 할머니 집에 갔다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미소 짓는 두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지연은 할머니의 엄마즉 증조모와 얼굴이 닮아 있었다그때부터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광복이 되기 전결혼하지 않는 처녀를 구하러 다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증조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증조부는 양인 신분으로 할머니의 당찬 모습이 좋아 보였고백정의 딸이라는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날 여성들은 옳지 않아도 옳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였고자신이 참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하지만 성격이라는 건 은연중에 드러나기 마련이다도저히 참지 못하겠다고 여기는 순간 발현되는 것이다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다정하게 대해주던 이웃 사람들도 증조모를 수군대며 없는 사람 취급했다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비 아주머니 덕분이었다새비 아주머니는 증조모에게 삼천이라고 불렀고 서로 다정하게 대했다가족 때문에한국전쟁으로원하지 않는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되며 서로 더 애틋해졌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함께해 온 여성들의 이야기다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을 이어오며새비의 딸과 삼천이의 딸인 할머니그리고 그 딸들과딸들의 딸 이야기다. 4대의 여성을 통해 질곡의 역사를 건넌다.


 

상처를 치유하려고 향했던 희령에서 할머니의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했고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대부분 타자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화자를 달리하여 말한다면 이 소설은 지연이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독자에게 들려주는 식이다그러니까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를 부를 때는 우리 엄마고새비는 새비 아주머니삼천이는 증조모로 칭한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을 때 자식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견디기 힘들어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참고 인내한다옳지 않은데도 그것을 자식에게까지 바란다는 것이 문제다바람피운 지연의 남편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 지연을 질책하는 것처럼자신도 버거운 경험을 했음에도 딸에게도 같은 걸 바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나는 기억되고 싶을까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언제나 답은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내가 기원하든 그러지 않든 그것이 인간의 최종 결말이기도 했다. (82페이지)

 


첫 문장부터 이 책에 빠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할머니에게로 이어진 여성들의 삶이 슬펐다이들의 삶이 안타까웠고 그들의 바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무엇보다 그 시간을 함께 건너온 새비와 삼천이의 우정이 애틋했다안녕을 바라면서도 처지가 달라 연락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도 마음이 아팠다.


 

살아가면서 새비와 삼천이 같은 친구가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친구 지우에게는 할 수 있었듯 단 한 사람의 친구면 충분했다새비와 삼천이처럼그들 혹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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