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라는 제목만으로 나는 작가의 소설에서 보았던 것처럼 환경에 대한 르포식 에세이일거라 생각했다. 책을 받고 읽어보니 여행 에세이였다. 작가가 여행했던 장소의 기억들을 소환해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게 만든다. 또는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랄까. 여행 에세이에서 여행의 간절함을 느꼈다. 우리는 지금 외국 여행을 갈 수 없고, 그저 여행의 기억들만 떠올릴 뿐이다.
작가는 출판사의 편집자 겸 작가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대학 때부터 알았던 친구가 머물고 있는 뉴욕으로 향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 3주일간의 뉴욕 여행은 인생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서의 미래를 꿈꿔보는 일이었다. 뉴욕의 곳곳을 둘러보면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제국주의가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들의 유물을 보며 드는 생각들을 말한다.
센트럴파크에 소풍을 가서 오래된 펜스에 버려진 토끼 인형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버려진 물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찍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을 기억하려 찍은 사진이 3백 장을 넘어간다고 한다. ‘잃어버린 것, 쓰고 버린 것’에 적용하여 작가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부합(符合)하여야 했다.
여행은 이처럼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뉴욕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몇 달 뒤 새로 만난 친구의 교환 실습에 함께 따라가 독일에서 한 달 동안 지내게 되었다. 독일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유서 깊은 소도시로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에 있는 곳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면 네덜란드로 갈 수 있는 곳 아헨에서의 기억들도 삶의 한 부분에서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지의 경험은 작가에게 소설의 중요한 인물과 장소, 주제를 나타내기도 한다. 독일의 아헨에서 여행했던 경험들이 『시선으로부터,』에서 주인공이 머문 공간으로 만들어져 우리를 그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작가가 서 있던 장소, 바라보던 풍경, 그 순간의 생각들이 소설에 나타나 우리를 상상력의 세계로 이끈다.
친구들과 함께 드라이란덴푼트에서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한 경계석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경험한 자만의 소중한 감정일 것이다. 문득 재작년 가족들과 함께한 태국의 치앙마이 여행에서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접경지대를 잇는 골든트라이앵글을 보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함께한 사람들과의 순간은 오래도록 그 기억 속에 머물게 한다. 작가가 뉴욕을 다녀온 후 뉴욕 앓이를 하다가 아헨을 다녀오면서 다시 시작된 그 장소의 ‘앓이’는 그 기억들 속에 있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엄마와 함께 오사카 여행을 하고, 영화이벤트로 런던을 다녀온 이야기들을 작가만의 시선으로 풀어내었다. 누군가의 여행은 여행에 대한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그 장소를 가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과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외국을 마음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해지는 게 아닐까.
여자들의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세계 곳곳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 여자 이름으로 된 제목의 소설들을 많이 쓴 것은 그래서인 것 같다. (중략) 세계가 이렇게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것은, 이 세계를 복원하고 개선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들이 교육과 사회 활동의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닐까 두려워하며 추측하기도 한다. 그 여성들이 잃은 가능성은 결국 인류가 잃은 가능성이 될 확률이 높아 조급해지지만, 여성이 극도로 억압받는 지역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먼 곳에서도 지지를 보내기 예전보다 쉬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227페이지)
온 몸을 검은 천으로 휘감은 부르카 차림을 한 여성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미국식 여성 혐오를 접하고 떠올랐던 감정들은 작가의 소설 속에서 아시아 여성을 대변할 수 있었다. 존중을 누리는 시대가 되길 바라고 모멸 대신 안전을 얻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그대로 마음속에 스몄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만큼 정세랑 작가의 소설이 좋다. 작가가 가진 그 시선의 올곧음이 좋다. 소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정하고 따스한 작가의 언어들이 좋다.
( )만큼 (정세랑)을 사랑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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