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하고도 지난한 삶을 보내는 주인공을 보며 언젠가 내가 아이를 키울 때가 생각나 아찔했다. 누군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있느냐 물을 때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면 바로 아이를 막 낳아 키울 때다.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 외에 내 시간이라고는 단 한 시간도 낼 수 없었던 때다. 모든 것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어야 했고 실제로 그랬다.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아이. 낮잠도 없는 아이를 안고 하루를 보내려면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출근하려고 씻을 때도 화장실 문밖에서 문고리를 잡고 울던 아이. 직장이고 아이고 다 팽개치고 싶었었던 시간들.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생각하기도 버거웠던 시간들이었다. 


하루라도 시를 쓰지 않으면 배기지 못했던 주인공. 시를 쓰지 못하면 좋아하던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필사라도 해야 했었다. 필사했던 노트들을 쌓여갔고, 신춘문예에 등단하지도 못했다. 그러한 시간마저도 낼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세 살된 아이와 태어난지 몇달 되지 않는 두 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시는 20평 아파트로 오게된 여동생의 아이를 여자가 돌보아야했다. 여동생은 회계 관련 사무실에서 일했고 학원에서도 수업을 하며 경제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청소 업무를 아버지는 경비원으로 생활하며 앞으로 나가야 할 아이들의 돈을 미리 마련해야 했다. 제대로 된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여자에게 살림과 아이들을 돌봐야했다. 


아이들을 깨워 유치원에 보내고 난후 아주 잠깐 시간동안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다. 그녀가 살림을 맡은후 어머니는 손을 놓았다. 입이 짧은 아버지를 위해 고기가 들어가 있는 반찬을 만들어야 했고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씻기고 재워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여동생은 밤늦게 들어와서 자는 모습을 잠깐 살펴본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가 여동생에게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했으나 3년의 시간동안 그녀는 시 한 편 쓰지 못했다. 시집을 필사할 수 있는 시간조차 갖기 힘들었다. 점점 지쳐가고 있던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녀는 혼자가 되어야 했다. 그녀 삶을 위해.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흰 종이 앞에 앉아야 했다. 쓸 수 있든 아니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1초만이라도 흰 종이 앞에 앉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37페이지)


대학의 문예창작과를 다닐 때 여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3년의 시간은 이미 버거웠다. 전에 만나던 남자와도 조카들때문에 헤어졌다. 처음에는 시간을 쪼개어 만났었지만 점점 시간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란 없었다. 가족 모두 자신만 바라보는 듯해 아마 숨이 막혔으리라. 시 한 자도 쓸 수 없는 시간들. 무언가를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그 시간이란 걸 내지 못했던 순간순간들이었다. 


책을 읽는내내 답답했다. 왜 이런 시간을 보내나. 아이들이란 존재는 그 무엇보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지만 어렸을 때는 손이 많이 간다. 어느 한 사람만의 희생으로 아이들을 다 챙길 수 없다. 가족들이 있는데 왜 그녀 혼자만 그걸 짊어져야 하는가, 무척 답답하고 또 숨이 막혔다. 아마 주인공이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한 마음이 나에게까지 건너왔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런 글이 나올 수 없다. 그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고, 아직 어린 아이를 키우는 작가들의 고됨이 고스란히 엿보였다. 책의 뒷편에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던 구병모 작가의 글은 이 소설을 썼던 작가에게도 구병모 작가에게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을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중략) 시집을 읽거나, 몽상을 하거나, 끊임없이 단어를 열거하거나, 심지어 잠을 자는 것마저도 최선을 다했다. (146페이지)


결혼한 여성들은 모두 이런 시간을 보낸다.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이라면, 작가임에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본다. 책에서 나왔던 문장처럼,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라고 읖조리는데 그 말이 가슴에 파고 들었다. 아주 짧은 소설임에도 오래전의 시간들이 떠올라 울분을 참기 힘들었다.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단 두세 시간이라도 꼭 필요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서였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있을 모든 여성들에게 외치는 말과도 같았다. 


#우리의정류장과필사의밤  #김이설  #작가정신  #책  #책추천  #책리뷰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소설향  #소설향시리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