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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도쿄의 한복판. 한 남자가 운전중이다. 쿵하고 차에 무언가가 부딪혔다. 좀비였다. 차로 달려드는 좀비들을 헤치고 가다보니 더 많은 좀비들이 차를 가로막고 있었다. 차에서 쇠지레를 꺼내 좀비들을 찌르며 탑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좀비들을 피해 옥상으로 갔더니 하늘에 누군가 떠 있었다. 금빛 머리카락에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 미친 세상에서 자기를 데려가 달라며, 구원해 달라며 천사에게로 다가갔다. 많은 사상자를 내고 그 남자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사님'을 부르며.
이 부분을 읽는데, 또 좀비가 나오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좀비물이 지겨워질 즈음이어서 반갑지 않은 소재였다. 그러한 나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책을 읽다보니 알게 되었다. 이 소설은 좀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남자가 천사를 부르며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마약과 같은 의존 약물에 대한 것들을 파헤치는 이야기였다.
형사였던 진자이 아키라는 히와라 쇼코와 함께 변호사 부부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히와라 쇼코가 죽임을 당하자 다섯 명의 남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도망쳤다. 물론 경찰 신분을 버리고 말이다. 그가 도망친 이유는 사건을 계속 추적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막노동을 해가며 값싼 호텔을 전전하는 중이다. 그의 상사였던 기자키 헤이스케가 찾아와 어떤 여성을 만나볼 것을 권한다. 먀악 단속관 미즈키 쇼코였다. 도쿄 한복판에서 수십 명을 무차별하게 살해후 투신한 사건, 즉 신종 합성 약물인 스노우 엔젤을 복용했을 것으로 우려되는 사건을 수사하는 마토리(마약 단속관)였다. 그녀는 그 사건을 추적하는데 도와달라며 진자이를 찾아왔던 것. 마약상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얼굴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전직 경찰관이었던 신분을 속이고 마약을 만들어 파는 하쿠류 노보류를 잡기 위해서는 일명 푸셔(pusher)라고 부르는 판매상과 접촉을 해야 했다. 푸셔로 활동하는 이사 도모히코가 사는 곳을 알아내 그와 접촉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다가가 마약을 하나 사고 결국 그와 함께 푸셔로 활동하게 된다. 눈치빠른 이사가 혹시나 알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읽게 된다. 더군다나 한때 경찰관을 했던 진자이는 자기가 마약을 거래한다는 게 양심에 꺼려졌다. 이사가 수입액의 20%를 현금으로 건네도 금액도 확인하지 않을 뿐더러 그 돈을 미즈키 쇼코에게 주어버린다. 문제는 가정주부에서부터 청소년들까지 약물에 의존한다는 거다. 돈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단속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2인 1조로 움직이며 술집 혹은 패밀리 레스토랑 등지에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너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진자이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더러 미즈키 쇼코의 사고방식과도 차이가 있었다.
스노우 엔젤은 한번 의존하면 끝장인,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약물이었다. 이사는 새로운 마약 루트를 위해 갱생 프로그램을 하는 장소에 방문해서 그들에게도 마약을 팔고자 한다. 마약 판매상인 이사의 말이 인상적이다. ' 향정신성 물질이 위법이며 얼마나 위험한지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해요. 요컨대 절대 시작하지 못하도록 할것. 지금 현재 약쟁이가 얼마나 있건 간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차피 몇십 년 후에는 약쟁이들이 다 죽고 없을 테고, 그때가 되면 샤브는 절멸합니다. 간단한 이치예요.' (194~195페이지) 라고 했다. 더불어 담배 금지도 외쳤는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다른 좀더 유해한 약물로 나아가기가 쉬워진다는 의미였다. 각성제 사용자 중 약 9할이 흡연자라는 설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약을 판매하는 자들이 마약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절대 없다. 마약의 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진자이는 이사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신종 약물인 스노우 엔젤을 흡입하게 되는데 이 장면은 영화 <마약왕>의 송강호, <독전>의 조진웅을 떠올리면 된다. 마약을 하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빛났다. 너무도 고요하고 편안해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그러나 약기운이 사라지자 약을 갈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고 창문으로 야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날개달린 천사가 부르는 것 같아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로써 진자이는 알게 된 것이다. 스노우 엔젤이 단순한 약물이 아님을. 전 세계 사람들을 의존하게 만드는 궁극의 의존물질임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기 출간된 『데블 인 헤븐』의 프리퀄 형태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위해 일본 정부가 도입한 카지노와 함께 어떤 것이 사회에 유익한 것인지를 묻는데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의존약물이라는 점이었다. 굉장히 흔한 주제이면서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전직 경찰관이자 범법자인 진자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깃든 악의 무리를 파헤치는 내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데블 인 헤븐』의 내용 또한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러한 내용이 영화속에서나 볼 법한 내용이었으면 한다. 제발 우리 사회에서는 퍼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바랐던 것처럼, 아무도 몰래 우리 곁으로 다가와 의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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