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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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더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올해는 비가 무척 자주 내린다. 그것도 많이. 폭우가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의 청춘도 이처럼 폭우와도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열정적이면서도 속수무책인 청춘은 묘하게 폭우와 닮았다.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나싶게 화창한 빛을 내뿜기도 하는 것. 비가 그친뒤 저 너머의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바라보듯 우리 삶은 이처럼 고통과 환희가 공존하지 않을까.

 

 

 

조해진 작가의 『여름을 지나가다』를 5 년 전에 읽고 개정판이 나와 다시 읽었다. 청춘의 고통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이름이 약간 바뀌었지만 여름의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은 그대로다. 여전히 아프고 어떠한 결정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청춘들은 살대가 두개 쯤 빠진 우산을 들고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민이라는 인물은 현재 부동산중개소의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면서 매물로 나온 빈집을 떠돌고 있다. 대학생 혹은 헤어 디자이너, 승무원으로 만화가로 30분짜리 인생을 살며 자신의 진짜 삶을 잊고 싶어한다. 어느 곳이던 30분짜리 인생으로 머물렀지만 가구점에서만큼은 안식을 얻었다. 가구점은 목수의 땀과 희생이 밴 곳이다. 그러나 장사가 안돼 월세를 내지 못하여 보증금을 거의 까먹었다. 커피 한 봉지를 서랍 속에 넣어두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거울을 응시한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흐느끼고 만다.

 

수호의 집은 망했다. 아버지는 빚을 내어 가구점을 냈지만 장사가 안돼 방에 틀어 박혔다. 여동생과 엄마는 직장을 찾아야 했고, 수호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자기의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주운 지갑 속에 든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쇼핑센터의 창고에서 일하게 된 수호는 말없이 일해왔던 게 좋은 이미지를 주어 시급 1,150원이 더 많은 쇼핑센터의 옥상에 위치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부모와 함께 쇼핑을 나온 어린 아이들의 놀이동산이었다.

 

 

 

쇼핑센터의 놀이동산의 책임자는 연주다. 직접 바느질을 해 피에로 복장을 만들어 열심히 한 덕분에 그곳의 책임자가 되었다. 보조 스태프로 온 박선우의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다. 커피숍을 차리고 싶은 연주는 쉬는 날에도 홍대 거리로 가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었다. 카페를 차리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민은 회계사무소의 회계사였다. 연하의 직원 종우와 함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약혼자인 종우을 저버렸고 둘은 헤어졌다. 재개발지역인 보람연립의 은희 할머니를 끝까지 챙겨주지 못했다. 가구점을 공유하게 된 민과 수호는 비닐 우산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았고, 수호가 앓아 누웠을때 지극히 보살폈다. 다른 사람의 생을 30분 살고 죽는 것으로 하루에도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민은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던 마음을 수호를 보살피는데 쏟기도 하였다. 

 

 

 

6월, 7월, 8월을 지나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수호는 곧 군대에 갈테고, 민은 부동산중개소의 사무원이라는 직업을 그만둘 것이다. 선배가 회계사무소를 차리게 되면서 민에게 일을 하자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토록 뜨겁고 아팠던 여름도 끝나가고 있으니 이제 그들은 다른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햇빛이 비치면 가구점 한 곳으로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만들었던 목수의 작은 바람처럼, 기댈 곳 없는 청춘들에게 타인을 보살피고 기댈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으로 살며 수없이 삶과 죽음의 시간을 건너왔던 여름은 애도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의 여름도 애도의 시간이기를. 그 쓸쓸한 위로에 마음을 다독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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