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구입부터 하고 보는데, 이 책 또한 그런 책 중의 하나다. 다만 2019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것. 작년 여름, 외국여행시 읽으려고 가방에 챙겼었지만 약간은 무거운 주제로 여행지에서의 들뜬 마음과는 어울리지 않아 몇 장을 읽다가 그냥 덮었다. 한 해가 지나 읽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이 사라져버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두려운 코로나의 시대에 그저 망연자실한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에 다시 책장을 열었고, 나는 김연수 작가의 지난 날들의 기록들과 신념에 대하여 생각했다. 산문이 이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뤄도 되느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책에 대하여, 영화에 대하여 혹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사십 대의 현재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건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제대로 언급도 되지 않은 아까운 목숨들. 그 시절을, 아파하는 우리의 모습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글을 가리켜 개인적인 신념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에 다양한 감정과 그만의 신념이 들어 있어, 책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고, 그가 말한 영화에서 깊은 공감의 표시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다소 무거운 주제다. 최근의 에세이는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짧은 문장에 얇은 책이다. 순간의 감정과도 같은 것들을 엮어낸 글들이 많은데, 김연수의 글은 묵직하다. 행간에서 그날의 기록들을 뒤져보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았던 그날의 시간에 있게 했다. 그의 글은 잊지 말자는 의미로 읽힌다. 그날의 아픔을, 고통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다.

 

 

 

 

그냥 무심코 바라보았던 표지는 그저 달 모양이네, 했었다. 작가가 말하길 2019년 한 해 동안의 달의 모양이라고 한다. 달이 차 올랐다가 다시 이지러지기를 반복하는 날들의 기록. 즉 일 년 동안의 기록들을 모았다고 해야 한다. 다만 작가의 산문은 2008년에서 2017년 까지의 기록들이다. 그의 글들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금을 바라보게 만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겠다. 소설가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는 얘기다. 소설 쓰기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소설가는 자신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쓴다. 결국 그는 매일 소설을 쓰게 될 텐데, 그러자면 건강과 체력은 필수이다. (중략) 소설가는 불꽃이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뒤에도 뭔가를 쓰는 사람이다. 이때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다 타버렸으니까. 이제 그는 아무도 아닌 존재다. 소설을 쓸 때만 소설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권 이상의 책을 펴낸 소설가에게 재능에 대하여 묻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52페이지)

 

작가세계에 시를 발표했고, 다음해 장편소설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는 매을 글을 쓴다고 말하였다. 다 작품이 되느냐면 또 그게 아닌데 매일 소설을 쓰는 작업은 매일 지우는 작업을 하는 것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몇 년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빠져 그의 영화를 꽤 찾아 보았었다. 그 중의 하나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작품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료타의 메시지가 강하게 와닿았다. 자기의 아이라 여겨 키워왔지만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말을 듣고 고민하게 되는데,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를 묻는 아주 감동적인 영화였다. 김연수 작가도 이 영화에 대하여 말하였다. 료타와 케이타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 어릴적 아빠와의 일화를 얘기하며 케이타에 감정이입이 되었다고 했다. 어릴 적 기억때문에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 우리가 종종 하는 일이다. 자신의 기억과 맞물려 영화의 내용은 감동적이다.   

 

지구와 태양이 있는 한 아침 햇살은 영원히 반복되겠지만, 나는 또 사라진다. 이 시간적 대비가 영원히 반복될 아침 햇살을 순간적으로 아름답게 만든다. 바꿔 말하면 아름다움의 경험은 여기에서 나는 영주할 수 없는 존재, 그러니까 임시적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향유하고 탐닉하는 한, 나는 임시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나는 모든 게 영원하리라는 착각을 일깨우는 시와 소설을 접할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꼈고, 그때마다 '나'는 더욱더 임시적 존재가 됐다. 지난 계절, 내 공부 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임시적 존재로 돌아가기. (166~167페이지)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오늘 또 내가 살아 있구나. 밤새 안녕하였구나. 라고 느낀다는 건 생에 애착이 강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심코 하루를 열었지만 알고 보면 매일의 생이 경이롭지 않은가. 오늘이 나의 생의 마지막 남은 하루라고 여겼을 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해지겠는가. 허투루 보내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면 그만큼 후회하는 일도 덜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인터뷰집 『보르헤스의 말』과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을 말하며 '낭만주의적 착각에서 벗어나 임시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을 강조한다.  

 

 

 

작가가 쓴 산문의 경우 책이 빠질 수 없다. 소설을 쓰는 것 보다더 다른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작가의 산문은 수많은 책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돈키호테』 나 『1984』 등 뿐만 아니라 많은 책들을 말했는데 그나마 내가 읽은 책들이 많은 편이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왜냐면 작가가 쓴 글에 동감을 표시할 수 있고 반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책과 함께 전자책의 시장이 커지고 있다. 책 여러 권을 들고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자책을 많이 보기도 하는데, 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어렵거나 난해한 책은 종이책이 좋다. 앞장으로 가서 펼쳐보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책은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써 선호한다. 최근 산책을 나갈 때 음성 기능을 사용하여 들어봤는데 역시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가 편했다. 

 

작가의 신념의 기록 다음엔 「사랑의 단상」이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꿈꿀 수 있는 소설이 있고, 사랑이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최근 출간된 신작 소설과 함께 그의 책과 글쓰기 작업에 관련된 기록들이었다. 그 기록을 읽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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