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녹턴 Op.48 No.1을 계속해서 듣고 있다. 예전에 많이 들었으나 한동안 뜸했던 곡인데, 소설 속에서 계속 언급되는 음악이라 틀어 놓고 있자니, 마치 한밤에 듣는 양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연주자를 달리하여 두 번째로 듣고 있다. 피아노 소리에 귀기울여 창밖의 소음이 들리는듯 마는듯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 독고희는 현정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다섯 살의 희는 엄마가 아빠를 만나러 가는 걸 눈치 채었다. 엄마의 상자에서 반지를 꺼내어 끼고 갔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엄마는 밤늦게 술이 취해 들어왔고, 희의 옷에 토했다.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희는 엄마의 모든 것을 좇지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귀신같이 알았다. 엄마가 글을 쓰고 있으면 궁금해하는 희에게 할머니는 아빠에 대한 글을 쓴다고 알려 주었다.

 

 

어느날 엄마가 데리고 갔던 음악회에서 처음 쇼팽의 녹턴을 들은 후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악회에서 들었던 선율이 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음악소리때문에 심주호를 알게 되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 피아노를 좋아했던 주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수많은 대회에서 상을 받았어도 현실이 그를 피아노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반면 부모의 강요로 피아노를 치는 소연은 늘 문 뒤에서 피아노 연습 소리를 듣는 엄마때문에 힘들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다.

 

 

독고희, 심주호, 소연은 피아노와 애증의 관계에 있다. 이 세 사람의 관계도 애증과 비슷한데,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외부의 힘에 이끌려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 누구보다 피아노를 좋아하던 소년 주호가 피아노를 더이상 치지 못하게 되고,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소연은 부모에 의해 멀리 떠나게 된다. 관계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것과 받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는 것 같다.

 

 

그토록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희는 대학에 가서 음악 대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주는 영도에게 사랑을 갈구한다. 그렇지만 영도 또한 엄마 처럼 자신에게 사랑을 나눠주지 못했다. 함께 살면서도 다른 여자와 만나느라 밤늦게 들어오거나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때 알바를 마치고 들어오니 다른 여자와 누워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영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러한 희를 보면 안타깝다.  

 

 

독고희와 엄마 현정민의 데면데면한 관계에서 나는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을 떠올렸다. 사랑을 받고 싶어 고개를 빼들고 엄마의 시선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에서, 소설을 쓰는 현정민과 역시 소설을 쓰는 희의 모습에서 영인과 김 작가가 겹쳐 보였다. 마치 엄마에게서 탈출을 하듯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는 모습에서도. 가장 가까울 것 같은 딸과 엄마의 관계가 이처럼 서로를 겉도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희와 현정민의 데면데면한 관계에서 뭔가 감동을 주는 해피앤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우리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는 듯 씁쓸한 결말이었다. 독고희와 현정민의 관계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보통의 소설들처럼 서로 화해하거나 품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이십대 중반의 나이인 작가임에도 소설의 주제는 꽤 묵직하였다. 철학 전공자 답게 철학적으로 풀어갔으며, 그 모든 배경에 쇼팽의 녹턴이 있었다. 진실과 상처는 고통으로 남는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마 쇼팽의 녹턴이 없었으면 희는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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