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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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잠깐 보았던 장면이 있다. 러시아에서 사는 고려인들이 모여 한국 음식을 해먹는 풍경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고려인으로 태어났으나 러시아에서 태어나고 정착한 그들의 고향을 잊지않으려 음식을 해먹는 모습을 보고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 때도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였던 듯하다. 그저 일제 치하에 만주나 러시아로 이주한 사람들이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김숨의 『떠도는 땅』을 읽으며 고려인 강제 이주에 대한 아픈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역사였다. 검색 사이트에 '고려인 강제 이주'에 대하여 검색해보고 글을 찾아 읽으며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살고자 하여 떠났으나 그곳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 이주를 당한 사실이 못내 가슴 아팠다.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 것이 왜 소련의 스탈린은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하였는가 였다. 물론 소설에서도 나타났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중일 전쟁이 한창인 때 소련의 스탈린은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 시켰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외모가 비슷해서 간첩 색출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1937년에 약 172,000 명의 고려인들을 극동지역에서 중앙 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떠나기 사흘 전 일주일 치 식량과 당장 입을 옷을 준비하라는 이주 명령을 듣고 고려인들은 화물 열차에 태워졌다. 소시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말린 빵 등을 챙겨온 이들은 열차 칸에 모여 자신의 자리에 앉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열차 칸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양철통과 분뇨통으로 사용하는 양철통이 있었다. 하나 있던 난로의 불은 꺼진지 오래 되었다. 온통 암흑인 열차 칸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어떤 이들은 아무도 몰래 싸 온 음식을 먹고,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된 젊은 부부, 7개월에 이르는 임신부, 아픈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열차에 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생김새는 조선인이었던 이들은 왜 이주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게 열차에 태워졌다. 장사를 떠난 남편과 함께 떠나려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릴 수 없었다. 조선에서 떠나온 사람들은 러시아에서는 땅을 나눠준다는 말을 믿어서 자신의 땅 한 뙈기 갖고 싶은 마음으로 출발하였다. 조선의 독립은 요원해 보였고 어떻게든 자식들과 살고자 했다.

 

열차에 탄 금실의 시어머니 소덕은 떠날 날이 다가오자 바느질을 해 작은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곳에 하나하나의 씨앗을 담았다. 도착하게 된 땅에서 심을 씨앗이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채소를 심으려 치마에 주머니를 매달았다. 내가 죽더라도 치마를 벗겨 가라는 말이 안타깝다.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먹지 않아 젖이 나오지 않은 아이 엄마, 기도하는 여자의 남편. 아이가 죽자 눈물을 흘리며 열차 밖으로 던지던 아이의 아빠의 행동에 가슴이 아렸다. 땅을 찾아 떠났지만 그 땅에서 쫓겨 나 다른 땅으로 향하는 조선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졌다.

 

 

 

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 첩첩산중 두멧골에서 태어난 내가 러시아 땅을 떠돌며 살 줄이야...... (183페이지)

 

 

최근 김숨 작가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 인물들에게 천착한다. 그가 쓴 위안부에 관련된 소설을 두 권을 읽고는 일본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악행들이 떠올랐다. 또한 돌아온 위안부들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나는 우리의 이중인격을 바라보게 했다. 이제는 나라없는 설움에 살고자 하여 땅을 찾아 떠난 러시아에서 강제 이주를 당한 사람들을 말했다. 땅은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곳이다. 아무런 먹을 것이 없는 척박한 땅임에도 그곳에서 판자집을 짓고 쓴 물이 올라오는 풀 죽을 쑤어 먹는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젖 한 모금 나오지 않지만 살아가야 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김숨의 깊은 시선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은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다. 누리고 산 사람들이 아니라 노비의 자식이면서 땅 한 뙈기를 갖기 위해 고국을 등진 사람이다. 살아가는 곳이 고국이라 여기며 돌아갈 곳이 없는 나라를 그리워했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땅은 고국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이 아닐까. 비록 아직 독립을 못했지만 어디선가 고국의 씨앗을 키우며 살아가고 싶은 간절한 염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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