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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GV 시사회를 다녔던 적이 있다. 지방이라 감독,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는 못하지만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중계 형식으로 시사회를 연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질문들은 평이했었다. 영화계에서 GV 빌런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GV 빌런이라 함은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와 악당이라는 뜻의 ‘빌런(villain)’을 뜻한다. 즉 관객과의 대화에서 무례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을 말한다.
『GV 빌런 고태경』은 2020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정대건의 소설이다. 독립영화 감독인 조혜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영화라는 인생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을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전달한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오늘도 영화를 만드느라 땀을 흘리고 있다. 영화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지만 성공한 영화인들은 드물다. 그들을 모티프 삼아 오늘도 영화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독립영화감독인 혜나는 그가 만들었던 <원찬스>가 망하고 어떻게든 빚을 갚아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혜나가 만들었던 독립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종현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데 베레모를 쓴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혜나의 영화에 대하여 질문한다. GV 빌런이었다. 아픈 사실을 콕 찝어 말하는 GV 빌런 때문에 기분이 나빠 인터넷에 떠도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이후 GV 장면이 유튜브로 화제가 된다.
유튜브 영상을 보던 혜나는 GV 빌런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GV 빌런들은 극장에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에게 꽤 관심받는 콘텐츠가 될 것을 예감했다. GV 빌런인 고태경을 설득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제작지원에 나갔다가 한국영화교육센터 동기인 승호를 만나 고태경이 혜나가 좋아하던 영화 <초록사과>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혜나는 <초록사과>를 보고 영화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그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었다니 영화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 사람으로 알았던 고태경이 달리 보였던 건 당연했다.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는 실패한 영화를 만드는 게 나은가. 좀더 준비를 해서 만들었던게 나은가. 고민해 볼 수 밖에 없다. 한교영 저예산 장편영화 제작과정에 급작스럽게 공석이 생겨 참여했으나 망작을 찍고 말아 자존감 바닥으로 허덕일때 고태경이 들려준 말은 아주 의미있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138페이지)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아예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보다 완성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부족함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나의 탓, 세상 탓. 반반만 하라는 고태경의 말에 힘을 얻었다.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열정이 되살아났다.
소설 속 주인공이 조혜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작가가 남자라 그런지 주인공이 어쩐지 남자로 여겨졌었다. 어느 순간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 조혜나로 비춰져 인물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스크린에 쏘아진 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 (98페이지) 영화는 신기루와도 같다. 영화라는 신기루를 향해 그저 나아가는 영화인들의 갈망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실 독립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지방 특성상 독립 영화를 상영할 장소도 부족하거니와 상업 영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영화 예술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영화를 만들어야 그들의 즐거움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겠나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혜나가 고태경을 진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진심어린 시선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이제 막 독립 영화 몇 편을 찍은 조혜나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인생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몇 십년을 영화와 함께 살아온 고태경에게서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조혜나와 고태경 같은 영화인들이 있었기에 우리 또한 이처럼 영화라는 신기루에 매료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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