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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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부질없는 것이어서 어쩐지 읽은 내용 같은 단편이 있었다. 아마 젊은작가상이나 다른데서 읽었겠지 하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이상해서 다시 찾아 보니 4 년 전에 읽은 장편소설 『홀』의 내용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중  「식물 애호」 라는 작품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책을 찾기 시작했다.  장편 『홀』은 단편  『식물 애호』의 확장판이라는 걸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장편  『홀』과 똑같이  「식물 애호 」에서는 오기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내용도 거의 흡사한 것 같다.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오기가 바람을 어떠한 이유로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에서 교통사고가 났으며 퇴원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주한 건 장모의 슬픈 얼굴이었다. 딸을 먼저 보낸 장모의 얼굴에서 무언가 다짐같은게 보였다. 장모가 그 이유를 알고 있었겠지만 오기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로 간병인과 물리치료사를 해고 했으며 그에게는 장모 밖에 없었다. 오기의 집 정원은 매우 아름다웠다.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가꾼 덕분이었다. 하지만 장모는 정원의 나무를 뽑고 날마다 구덩이를 판다. 새로운 나무를 심으려나 지켜보자니 불안할 따름이다. 구덩이에 무엇을 심겠다는 것인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는 불안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오기가 장모의 행동을 바라보는 불안함.  「소년이로」 또한 유준의 집에 놀러왔다가 자꾸 자고 가면서 자신에게만 적의를 표현하는 유준의 엄마와 유준 아빠의 회사 상황 등을 지켜보는 소진에게 느껴지는 것도 불안함이었다. 소진은 유준 엄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을 알면서도 왜 유준의 집에 머무르는지. 자고 가라고 하면 뒷방에서 홀로 잠을 자면서 까지 유준의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했다. 


「원더박스」는 떨어지는 이불을 피하려다 넘어져 척수를 다친 수만과 그의 아내 소영의 이야기다. 계약을 잘못해 그 책임을 떠안은 수만은 김의 아파트를 찾았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치료비 때문에 누구의 책임인가를 묻지만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입원해 있는 수만때문에 간병인으로 일하게 되는 소영은 20여 년 동안 누워있는 환자인 노인을 돌보고 있다. 수만이 물었던 질문, 누구의 잘못이냐고 대답하고 말 것 같았다. 수만이 처한 상황과 아내 소영이 처한 상황. 이들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지 물을 수 밖에 없는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다. 


군대에서 폭력 가해자가 된 처남과 장인과 장모 그리고 노인이 구급차로 실려가던 밤에 짖지 않았던 사실을 탐구하는  「개의 밤」, 87일만에야 자신을 찾은 우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을 담은 「우리가 나란히」, 제초제를 잘못 뿌려 그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에게 묻는 「잔디」는 남편 또한 자신의 잘못을 모른척하고 있었다는 걸 말한다. 그 사과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부서 배치를 받은 진과 그의 사수  유의 어긋남 「월요일의 한담」. 오보에를 불었던 아버지가 잦은 실직에도 쾌활하였으나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할아버지를 케어했던 것들을 말한 이야기 「다음 손님」 또한 우리에게 남은 숙제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토록 다정한 아버지가 변해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 우리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말이다. 






「소년이로少年易老」라는 제목을 나는 '소년 이로' 라고 생각했다. 즉 이로 라는 소년의 이름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에서 앞부분을 따왔다는 걸 알았다. 즉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또는 변화를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 어떤 삶을 살았든 나이듦을 피할 수는 없다.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쓰러져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년 유준의 눈빛에서 우리는 어느 한 순간에 어른이 되고 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지 장애가 있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우리 앞에 놓인 미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고 있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나이들어가고 싶다는 건 나의 바람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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