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마음산책 짧은 소설
백수린 지음, 주정아 그림 / 마음산책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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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되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늘 그립고 함께하지 못해 아쉬워서다. 딸과 단둘이 하는 여행은 굉장한 즐거움을 줄거라 여기는데 아마도 그건 내 생각 뿐일 지도 모른다. 무조건 좋을 것 같지만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딸은 엄마를 위해 많은 걸 준비했을테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이 크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은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소설의 한 꼭지를 읽으며 엄마가 좀 딸의 요구를 들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네 명인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곤 한다. 시간이 되는대로 일정에 맞는 나라에서 함께 자고 함께 먹고 마시며 그 시간을 즐긴다. 올해에도 벌써 다른 나라를 향해 떠났을텐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하늘길이 막혀 아쉬울 뿐이다. 


백수린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물론 젊은 작가상에서 혹은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백수린 작가만으로 된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는 거다. 마음산책의 짧은소설 시리즈는 이기호 작가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다. 마치 에세이를 읽듯 무난하게 읽히며 소설 속 상황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총 13편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고 주정아 작가의 그림이 삽입되어 소설의 내용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작가가 말하길, '나는 오랫동안 나의 소설 작업이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일과 닮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언어로 그린 그림이 진짜 그림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근사한 일이었다.' 했다. 언어로 그린 그림은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타나 익숙한 느낌을 준다.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것처럼 짜릿함이 또 있을까. 「어느 멋진 날」에서는 아이와 함께 바닷가 파라솔에 누워 책을 보는 한 여자를 비춘다. 한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데 그는 자신의 발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 시선을 무심코 즐기는 한 여자의 마음에서 설렘을 느꼈다. 그는 여자에게 발이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와 짧은 대화를 하며 여자는 얼마나 설렜을까. 자기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해주는 사람이 이제는 드물 듯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더위나 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은행 등에 가곤 한다. 아마 집에서 공항이 가깝다면 공항처럼 더위나 추위를 피하는데 좋은 장소도 없다. 휴가 기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전기세 때문에 잘 때만 켜기로 약속한 진우와 주희는 휴가기간에 공항으로 향한다. 냉방이 잘된 공항에서 음식을 먹고 각자의 노트북을 챙겨 테이블에 앉아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주희는 문득 어렸을때 아빠와 떠났던 어느 여름 휴가를 떠올렸다. 텐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에서 머리를 내밀고 수영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 이거야 말로  「완벽한 휴가」가 아닌가. 


첫 문단에서도 밝혔지만   「비포 선라이즈」는 딸이 엄마를 위해 기획한 프랑스 파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를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했던 영화  「남과 여」에서처럼 해주고 싶었으나 파리의 에펠탑도 줄서서 기다리느니 그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자고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절대 저런 엄마가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여행 준비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그저 딸이 하자는 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행복한 여행이란 멀리있지 않다. 낯선 도시에서 함께 해 지는 석양을 함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무 일도 없는 밤」에서는 간병인으로 일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강설량이 최대치로 오른 날 주인공이 돌보고 있는 노인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연락했으나 폭설 때문에 노인은 홀로 죽어가고 있었다. 노인에게 무심했던 여자는 혼자 죽어가고 있는 노인에게 조금만 참으라며,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소설들은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 죽어가는 노인과 그를 돌보는 간병인, 아이를 가진 나이 어린 부모, 예쁘다며 키스 한 번만 하자고 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시선. 일본어를 배우며 사귀게 된 남자와 5년후 다시 한번 도쿄를 여행하게 되는 연인들의 모습들. 아내가 죽고 딸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오게 되는 여정을 말하는 글들. 본인은 아무리 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나 우리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모습에서 세대 간의 격차를 느끼게 된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우리 주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으며 다양한 삶을,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여기게 된다.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겪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는 채로 있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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